[우리말 바루기] '우레'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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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꽃'의 생성 비밀을 소재로 인생과 우주를 노래한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일부다.

인용한 시어 '천둥'과 같은 의미로 쓰는 우리말 중에 '우레'가 있다. "우레라니? 우뢰(雨雷)가 맞을 텐데"하며 미심쩍어하는 독자도 있을 게다.

'우레'는 '하늘이 운다(鳴)'는 뜻에서 유래했다. '울다'의 어간 '울-'에 접사 '게'가 붙어 '울게'가 성립되고, 다시 '-ㄹ'아래에서 ㄱ이 탈락해 '울에'가 되는데, 여기서 앞글자 ㄹ받침이 뒷글자 첫소리에 붙어 '우레'가 된 것이다.

1988년 한글맞춤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한자어 '비 우(雨), 천둥 뢰(雷)'에 이끌려 '우뢰'를 표준어로 사용했었다. 우리 옛말인 '우레'가 한자어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천둥'과 함께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다. '우레'가 살아나면서 한자어 '우뢰'는 표준말 자격을 상실했다.

참고로 천둥은 한자어 '천동(天動)'이 원말인데 호도(胡桃)→호두, 통소(洞簫)→퉁소, 장고(杖鼓/長鼓)→장구 등의 예에서 보듯 한자 모음 'ㅗ'가 'ㅜ'로 변해 우리말이 된 경우다.

세찬 비바람 뒤에 오는 무서운 소리 '천둥'과 '우레'가 아름다운 창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말 바루기의 숙제도 안겨줬다.

김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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