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은, 부동산 시장 개입 신중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의사를 처음으로 내비쳤다. 그는 금리 인상이나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 조정, 부동산 대출 총량제까지 도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세금을 높게 매기고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등 정부의 숱한 부동산 대책이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기본 책무는 물가 안정과 통화가치 안정이다. 한은이 부동산 시장 개입을 검토하는 자체가 불행한 상황이다. 금융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왜곡시키고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은 총재의 발언이 구두 개입에 그칠지 실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 인하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경기가 바닥인 국면에서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 과다한 부채를 짊어진 가계와 중소기업의 주름살을 깊게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2%포인트 이상 금리를 올려야 할 터인데 부담스러운 형편이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대출 총량제다.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에 최고 한도를 강제로 도입하는 이 조치는 국민경제상 긴급한 상황에 동원되는 극약처방이다. 외환위기 때도 꺼낸 적이 없는 카드다. 시장에 공급되는 돈줄을 틀어막는 조치인 만큼 부동산 거품 진화에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유혹만큼 부작용 또한 크다. 사실상 관치금융이나 다름없다. 부동산 실수요자들조차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된다. 1990년대 일본은 이 조치가 과도하게 시행되는 바람에 자산거품이 완전히 붕괴돼 엄청난 후유증을 경험했다.

중앙은행도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최근의 부동산 폭등에는 저금리에다 넘쳐나는 부동자금이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목표는 당연히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이다. 개입하더라도 적정의 금리 인상이나 담보대출 비율 인하로 시장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것이 우선이다. 부동산 대출 총량제 같은 최후의 수단을 쓰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한은 총재가 점심 자리에서 불쑥 던질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