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엑스캘리버』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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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어느 민족이든 그들 나름의 이상과 이념을 상징하는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신화는 그 민족의 가슴 속 깊이 은은한 향내를 간직한 채 구전되어 면면히 그 맥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많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신화적인 원형을 우리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엑스캘리버』(Excali-, 영국건국신화 속에 나오는 검의 이름)는 바로 영국의 민족 혼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신화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영화『엑스캘리버』는 고대 영국의 민족정신의 상징인 토속신앙과 기독교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서로 흡수와 조화를 통해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예술성과 영상미가 적절히 안배된 뛰어난 예술영화다.

<원탁의 기사><아더왕의 죽음>등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 영화는 부족으로 갈라져 있던 영국을 최초로 통일한 전설의 왕「아더」의 얘기다. 「아더」왕 탄생에 얽힌 비화에서부터 원탁의 기사, 호수의 기사「랜서로드」, 화려한 카메롯 궁, 성배, 그리고 천기를 알고 있는 마법사「머린」, 민족정신의 총화로 응집된 왕검<엑스캘리버>로 천하를 평정하는 얘기가 2시간20분 동안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는 근친상간, 모반과 배신의 피 비린내나는 처절한 투쟁, 원색적인 애증의 장면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거부반응보다는 찬란한 예술감각을 만끽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작품의 감독인「존·부어맨」의 돋보이는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영화란 다른 어떤 예술적 표현수단과는 다른 그 자체가 언어』란「존·부어맨」감독의 말을 실감케 된다.「부어맨」감독은 영국태생으로 칸영화제의 감독 상을 수상한 예술 파 감독. 이 영화에선 주제음악으로 쓰인「칼·올토」의 교향곡『카르미나·부라나』(대지의 신에게 바치는 노래)도 일품. 장엄한 교향악은 영화의 감동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아무든 우리를 시종 흥분케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높은 품격과 뛰어난 영상 미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이 우리 시대를 재조명, 음미할 수 있는 혜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학수<고대교수·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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