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통법 폐지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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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시행 보름을 맞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명백히 실패한 법이다. 예전에는 똑 같은 휴대전화를 누구는 비싸게, 누구는 싸게 샀지만 단통법 도입 이후 다 같이 비싸게 사게 됐다. 대부분을 ‘호갱(호구+고객의 비속어)’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케팅비가 줄어든 통신사만 잔칫집이고 나머지 소비자·제조업체·유통대리점들은 한꺼번에 피해자가 됐다. 단통법이 ‘단지 통신사만 배 불리는 법’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통과시킨 단통법 후폭풍에 야단법석이다. 정의당이 단통법 제정을 사과했고, 여야도 개정안을 낼 움직임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무게를 두고 있는 ‘보조금 분리 공시’를 도입한들 마찬가지다. 잘못된 법률은 한시바삐 폐지하고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는 게 옳다.

 ‘단통법’은 태생 자체부터 정치적이다.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대선 공약이 발화점이었다. 하지만 단말기 값과 보조금을 그 원흉으로 지목하면서 헛다리를 짚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국제 시세가 있는 단말기 가격은 마구 찍어 누를 수 없다. 보조금만 손봐서 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이통 시장에서 SK텔레콤의 요금은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개 시장 점유율 50%를 넘지 않는 선이다. 그러면 KT와 LG유플러스가 좀 더 낮은 요금을 매긴다. 대체로 3위 사업자도 적자를 내지 않는 수준이다. 이런 요금 인가제가 20년 넘게 이어졌다. 이미 3위 사업자마저 매년 6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과 1000만 명이 훌쩍 넘는 가입자를 자랑하는데도 말이다.

 보조금 문제는 2004년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 이후 해마다 반복돼 온 고질병이다. 현재 국내 통신3사의 네트워크 품질, 고객 서비스 등은 엇비슷하다. 따라서 요금 경쟁이 묶여 있는 한 다른 사업자의 고객을 뺏어오려는 카니발리즘, 즉 불법·편법의 보조금이 판칠 수밖에 없다. 우리 가계의 통신비가 월 16만원에 육박하는 것도 이런 적폐(積弊)의 산물이다. 이통업계가 연간 8조원의 마케팅비를 뿌리면서 정작 요금 경쟁은 벌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110%가 넘어 이미 포화상태다. 더 이상 정부가 개입해야 할 불완전한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 실패보다 정부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 이통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면 단통법으로 보조금을 더 규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보조금 규제를 없애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정부의 요금 인가제를 폐지하고 과감하게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통신업체들이 보조금과 요금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통신비가 싸진다. 정부의 역할도 다양한 요금 구조를 유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자신의 형편과 통화량에 맞춰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선진국이 취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