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어린이집 '바늘구멍' "애 낳자마자 신청해도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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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사인 유모(33.서울 서초구)씨는 최근 네 살배기 딸 아이를 서초구 Y구립 어린이집에 넣었다. 대기자 명단에 올린 지 무려 2년2개월 만이었다. 유씨처럼 이곳에 아이를 보내려고 기다리는 대기자는 80여 명. 이들 중에는 출생신고를 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린 경우도 있다.

서울시청이 운영하는 시립어린이집은 입소 대기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지난해 8월부터 대기자 명단과 순서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이를 통해서만 입소 신청을 받고 있다. 입소를 놓고 빚어지는 특혜시비 등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로 보육시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의 대기자 수는 7만7000여 명이나 된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참여정부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나라가 키워준다'며 공보육 시스템 확충을 약속했지만 집권 2년여가 지나도록 실현되지 않고 있다.

◆ 왜 국.공립을 선호하나=민간시설에 비해 보육료는 싸고 서비스는 월등하게 좋기 때문이다.

여성부에 따르면 국.공립 어린이집의 보육료는 1인당 월 15만3000~29만9000원으로 민간 어린이집의 18만5000~35만3000원보다 싸다. 민간시설의 경우 월 3만~5만원의 교재비와 입학금 등을 추가로 받는 곳이 많아 실제 부모 부담은 국.공립에 비해 월 10만원 정도 많다.

국.공립시설은 민간시설에 비해 교사의 평균 학력도 높고, 급식의 질도 우수하다. 여성부가 최근 전국의 어린이집 100곳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식평가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은 56.5%가 우량등급을 받았다. 이에 비해 민간시설은 5.6%만 우량등급이었다. 정부는 국.공립시설의 신축비와 교사 인건비도 30~80%나 지원해주고 있지만 민간시설에는 정부지원이 거의 없다.

◆ 얼마나 부족한가=지난해 말 현재 전국의 어린이집 2만5300여 개 가운데 국.공립은 5.3%(134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시설이다. 이는 정부가 예산문제를 이유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기보다는 민간 어린이집을 많이 짓도록 유도해 왔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기금을 통해 어린이집을 짓는 민간인들에게 은행보다 싼 이자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방법 등을 통해서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간 민간 어린이집은 1만7700여 개가 생겨났지만 국.공립시설은 350여 개 늘어난 데 그쳤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전체 아동의 50% 정도를 국.공립 시설이 수용해야 한다"며 "전국에 80명 규모의 국.공립 시설 5000개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시설 확대의 걸림돌과 전문가 제안=국.공립 어린이집이 부족한 데 따른 민원이 폭주하자 정부는 올해 38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에 국.공립 어린이집 400개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산지원 방식이 비현실적이어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여성부는 국.공립 어린이집(80~100평 기준)을 신축하는 시.군.구에 최대 1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건축비(5억~10억원)에 크게 못 미쳐 기초자치단체들이 건설을 꺼리고 있다.

기존의 민간 어린이집 운영자들이 인근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생길 경우 그곳으로 보육아동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자치단체에 신설을 막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회 서문희 부연구위원은 "어린이집을 지을 때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국고 지원비율을 달리하되 전체 비용 중 국고 부담을 70% 정도로 올리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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