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전단 살포? 우린 살기 위해 길을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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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익진
사회부문 기자

12일 오후 1시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의 유적지인 ‘돌무지무덤’으로 들어가는 폭 3m 시멘트 도로. 주민 김태준(64)씨가 트랙터로 길을 막아 놓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돌무지무덤에서 대북 전단을 날린다는 얘기가 있어 길을 막았다”며 “이젠 생존이 달린 문제라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연천주민들은 돌무지무덤으로 가는 다른 도로 3곳과 능골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 등을 트랙터와 1t 트럭으로 막고 주변을 지켰다. 돌무지무덤이나 능골주차장은 대북전단용 풍선을 띄우는 곳으로 애용되던 장소다.

 연천주민들의 이 같은 ‘전단 살포 길 막기’는 전날인 11일 시작됐다. 북한이 전단을 매단 풍선을 떨어뜨리려고 고사총을 쏘는 바람에 주민들이 대피소로 뛰어간 바로 다음 날이다. 11일엔 길 막기가 효과를 거뒀다. 이날 연천에서 풍선 15개를 날리려던 탈북자단체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은 주민들이 길을 차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포천시 산정호수 인근으로 장소를 바꿔 풍선 한 개만 날리고 돌아갔다.

 12일엔 전단 살포가 이뤄지지 않았고, 풍선 한 개를 띄워 올린 11일에는 북한의 사격이 없었다. 하지만 연천주민들의 불안감은 그대로였다. 익명을 원한 이모(60)씨는 대북전단 살포가 잦아진 2012년 10월의 일을 떠올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사소한 삐라 살포 움직임이 포착되는 즉시 경고 없는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 실행될 것”이라고 했던 때였다. 그러고 얼마 뒤 연천에서 전단을 띄우겠다는 얘기가 들렸다. 이씨는 “겁이 나 경찰·군인들에게 말려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2년간 살포가 계속됐으나 별일은 없었다. 때때로 북한이 으름장을 놓을 때면 주민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 등에 “막아 달라”고 했으나 전단 살포는 계속됐다. 그러다 결국 마을에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을 맞게 됐고, 주민들은 스스로 전단 살포를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의 사격에도 탈북자단체 등은 전단을 계속 뿌리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46) 대표는 “(북한이 사격했다고) 정부가 대북전단을 보내지 말라고 나약하게 나설 게 아니라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이석우(56)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전단을 날리는 명분이 어떻든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휴전선에 인접한 주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관계없다는 식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또 북한 실세들이 우리를 찾아와 대화하자는 분위기가 싹트는 때 아닙니까. 남북도 저러는데, 전단을 날리는 분들도 사전에 우리와 대화했으면 합니다.”

전익진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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