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석유재벌 유코스 전 사장 횡령 등 혐의 9년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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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사장(가운데 위)이 31일 모스크바 메샨스키 법원에서 재판이 끝난 뒤 호송되고 있다. 아래 오른쪽은 함께 기소된 유코스 지주회사 메나테프의 플라톤 레베제프 전 사장. [모스크바 AP=연합]

개방 이후 러시아의 최대 정치.경제 스캔들로 기록될 민간석유기업 유코스 사태가 약 1년 반 만에 일단락됐다. 러시아 법원은 2003년 말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돼 조사를 받아오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사장에게 31일 9년형을 선고했다. 러시아 국내외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 중형 선고=모스크바 메샨스키 법원은 이날 호도르코프스키에게 사기.횡령.탈세 등 9개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해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유코스 지주회사인 메나테프의 플라톤 레베제프 전 사장에게도 역시 9년형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는 재판부가 1200여 쪽에 이르는 판결문 낭독을 시작한 지 15일 만에 내려졌다. 호도르코프스키는 판결 직후 "크렘린이 이번 판결을 결정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조국에서 무죄를 입증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소송을 계속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쏟아지는 국내외 비판=유코스사는 판결 직후 "이번 선고는 호도르코프스키 제거뿐 아니라 유코스사를 붕괴시키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계 정당인 '우파연합'의 공동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는 "9년형은 살인.강간 등 중범죄자에게나 선고되는 것"이라며 "현 정권이 호도르코프스키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상원의원 토머스 란토스는 판결 뒤 "선진국 모임인 G8에서 러시아의 축출을 요구하는 법률안을 상원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 호도르코프스키와 유코스 사태=러시아의 대표적 신세대 기업인인 호도르코프스키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국영기업 사유화 과정에서 재벌로 성장했다. 95년 유코스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인수해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러시아 제2의 석유기업으로 키웠다. 개인 재산도 120억 달러나 축적해 2004년 경제전문지가 선정한 '40대 이하 세계 최고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정.재계에 영향력을 키워오던 호도르코프스키는 2003년 10월 러시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정 칼날을 맞았다. 호도르코프스키가 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설과 그가 스스로 대선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설이 크렘린을 자극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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