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터널 78곳 부실 … 균열 막는 나사 덜 박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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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해 2010년 이후 착공된 전국 터널 121곳 중 78곳(64%)의 기초공사가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터널 암벽의 균열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록볼트(Rock Bolt·길이 3~5m의 철근 나사)’가 당초 설계보다 최대 70%가량 적게 들어간 경우도 적발됐다. 록볼트가 부실 시공되면 터널에 균열이 생기거나 붕괴할 위험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문홍성)는 록볼트 설계수량 1만7000여 개 중 4000여 개를 적게 시공해 공사비 8억6000만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하청업체인 선산토건 현장소장 이모(56)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은 시공 과정에서 공사비가 늘어나자 록볼트를 설치하지 않거나 굴착 후 생긴 흙(사토) 처리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맞추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빼돌린 공사비는 다른 자재를 구입하거나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검찰은 또 록볼트와 관련한 거래명세표와 세금거래서 등을 위조한 혐의(사문서 위조·행사 등)로 원청업체인 삼성물산 이모(36) 품질관리팀 대리 등 7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올 2월부터 도로공사와 함께 2010년 이후 착공한 전국 터널 121곳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78개 터널(64%)에서 평균 27% 비율로 록볼트가 설계 수량보다 적게 설치된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 관계자는 “모두 22개 시공사, 49개 하도급사가 연루돼 업계 전반에 록볼트 부실 시공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중 빼돌린 공사비 규모가 큰 영동~옥천 1공구(선산토건·계룡건설), 주문진~속초 5공구(삼환기업·구산토건) 등 8개 공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했다. 구산토건이 시공한 주문진~속초 5공구 등 3개 터널에선 록볼트의 70%가 빼돌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실제 시공보다 과다 지급된 공사비는 터널 한 곳당 1억~8억원씩 총 187억원이었다. 검찰은 나머지 업체들에 과다 지급된 공사비도 전액 환수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도로공사와 현장 감리원 등도 록볼트 반입 수량 점검을 부실하게 한 잘못이 있지만 현행 건설기술관리법상 벌점 부과만 가능하고 형사처벌 근거는 없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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