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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홍준의 줌마저씨 敎육 공感

남자아이의 눈에 광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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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논설위원

아빠와 아이는 PC 앞에 모여 앉아 전략을 짜듯 머리를 맞댔다. 이어 마우스를 움직여 코딩(프로그램을 짜는 활동)을 했다. 코딩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로봇을 제어했고, 로봇은 아빠와 아이의 지시에 따라 책상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요즘 주말마다 경기도 서판교에 있는 ‘아빠의 공작소(대디스랩)’란 곳에선 ‘아빠와 함께 코딩하기’(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943751&cloc=joongang|article|related_issue) 행사가 한창이다. 청소년 주간신문인 소년중앙이 내년부터 초·중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되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앞두고 독자들에게 스크래치란 프로그램을 통해 코딩의 세계를 미리 맛보게 해드리려고 기획한 행사다. 사실 교육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깝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레고블록처럼 돼 있어 아이들은 블록을 쌓듯 프로그램을 짜면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평소 일과 스트레스에 쫓겨 사는 아빠들도 그렇지만 여기에 참가한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의 눈에선 어김없이 광채가 난다는 점이다. PC와 프로그래밍 언어, 로봇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데 있어 남자아이들이 확실히 재능을 보였다. 어렸을 적 조립식 장난감(일명 프라모델)에 빠져 산 아빠, 무수한 레고블록을 조합해 뭔가를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한 남자아이의 환상적인 조합이라고 할까.

 요즘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은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놀이활동에 허기진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늘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 하고, 학원 공부 하고, 기껏해야 한두 시간 PC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정도다. 학교나 학원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테스트하는 것도 학업 능력과 관련된 것이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말한 다중지능 여덟가지 가운데 주로 언어지능이 학교나 학원에서 칭찬받는 재능이다. 이런 재능에선 남자가 여자를 못 따라가는 게 맞지 않나. 그러니 학교 등수에서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 밑을 깔아준다는 비난은 남자 입장에선 억울하다. 원래 남자는 그렇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학교에 가 보면 가장 부러운 것이 학교에 있는 공작실이다. 초·중학생들이 보호안경을 쓰고 톱질이나 못질을 하는 건 물론이고 공작기계를 돌려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우린 어떤가. 우리의 학교에선 이론만 남았을 뿐 실험·실습은 오래전 실종됐다. 남자들의 핏속을 타고 유전되던 제작 본능이 우리 학교 현실에서 거세된 건 아닌가 생각했다.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