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누구에게 넘길지 건물주 아닌 임차인이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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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권리금에 대해 ‘임차인끼리 영업권을 넘길 때 주고받는 비공식적인 웃돈’ 정도로 여겨 왔다. 사법부의 판단도 같았다. 2000년 9월 대법원은 “유·무형의 가치(권리금)를 임차인이 계약기간 동안 누린 이상 임대인(건물주)은 권리금 반환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권리금이 관행으로 자리 잡고 그 액수도 커지면서, 이에 대한 피해 예방·구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때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한 구체안이 24일 나왔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임차인이 가게를 넘길 때 자신이 새 임차인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치킨집을 운영하는 A가 권리금 1억원을 받고 가게를 B에게 넘기려 할 때 건물주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B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치킨집 운영권이 넘어가는 상황에 건물주가 개입하거나 건물주가 직접 다른 임차인을 구하면 A가 권리금을 온전히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본 것이다. 건물주는 계약 종료 3개월 전 갱신 거절을 통보한 경우 계약 종료일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 계약 종료 후 2개월까지 A가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임차인이 월세를 3개월 이상 내지 않거나 임대 계약 당시 예고한 대로 상가를 재건축할 때는 건물주가 권리금 회수에 협조할 의무가 없다. 의무기간이 지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건물주의 방해로 임차인이 권리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또 건물주가 자신이 직접 영업한다는 이유로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부할 때도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권리금 분쟁 발생에 대비해 권리금 산정기준을 만들 예정이다. 이번 대책은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기존에 맺어진 상가 임대차계약에도 새 제도가 적용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건물주의 재산권 행사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나온다. 건물주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 임대계약을 맺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건물주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의 계약을 거절할 수 있는데, 이 ‘정당한 사유’를 두고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양재모 한양사이버대 법학과 교수는 “권리금은 기본적으로 임차인과 임차인 간의 문제인데, 이를 국가가 억지로 개입하려다 보니 허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임차인 간 거래에 대해 제3자인 건물주가 책임을 지도록 한 것부터 부당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승면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건물주에 대한 거래 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측면이 있지만 건물주가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도 함께 규정했기 때문에 본질적인 기본권 침해는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이유정 기자

◆권리금=영업시설이나 거래처, 신용, 영업 노하우, 상가 위치에 따른 영업상 이점 등을 포함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월세 이외에 지급하는 대가를 말한다. 법무부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고쳐 권리금의 정의를 이렇게 반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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