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엔딩’이었지만…사재혁의 아름다운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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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역사(力士)' 사재혁(29·제주도청)의 7전8기 드라마 결말은 '새드 엔딩'이었다. 하지만 도전 자체만으로도 '인간 승리'였다.

24일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85kg급 경기가 열린 인천 달빛축제정원 역도경기장. 모친 김선이 씨는 관중석 한 켠에서 아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인상 1차 시기에 165㎏를 성공한 사재혁은 2차 시기에 171㎏를 신청했다. 자신의 85㎏급 최고 기록인 166㎏를 5㎏나 뛰어 넘는 무게였다. 사재혁은 잠시 무게 중심이 흔들렸지만 고통의 시간들을 되뇌이며 힘차게 일어섰다. 171㎏은 2003년 송종식이 작성한 170kg을 1kg 넘는 한국 신기록이었다. 인상에서 로스타미 키아누시(이란)보다 1kg 적은 2위였다.

용상을 앞두고 전광판에는 라커룸에서 팔을 주무르고 있는 사재혁이 비춰졌다. 김 씨는 "어떻게. 아파서 그런가봐"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김 씨는 옆좌석의 기자에게 "런던올림픽 큰 부상 이후 역도를 그만두라고 했었다. 팔이 덜렁거려 6개월간 밥도 대신 숟가락으로 먹여줬다"며 "내가 걱정할까봐 몰래 7번째 수술을 받고왔다. 메달을 떠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두 손을 모았다. 경기 직전 행여 아들이 부담을 느낄까 아무말 없이 포도즙만 건네고 온 어머니다.

김 씨는 아들이 플랫폼에 서면 눈을 가리고 땅을 쳐다봤다. 결과는 관중들의 환호 혹은 탄식으로 대신 확인했다. 사재혁은 용상 1차 시기에서 207kg를 신청했다. 본인의 용상 최고기록을 또 5kg 넘어선 무게다. 하지만 1~2차 시기에서 207kg를 실패했고, 3차 시기에도 210kg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중국의 톈타오(20)가 합계 381㎏(인상163㎏·용상218㎏)로 금메달을 땄다.

실격으로 '노메달'에 그쳤지만, 참가 자체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았다. 사재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77kg급 금메달리스트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경기 도중 팔꿈치가 탈구됐다. 바벨을 놓지 않고 버티다가 부상이 커졌다. 사재혁은 2초만 눈을 감으면 부상 장면이 리플레이 돼 불면증에 자살충동까지 느꼈다.

어느날 꿈에서 탈구된 팔을 맞추고 경기장에 갔는데 관중도 없고, 경기도 끝나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니 '해봐라'란 응답이 들려왔다. 역도를 좀 더 해도 된다는 신의 계시라고 느꼈다.

사재혁은 지난해 3월 어깨와 손목, 무릎 등에 이어 생애 7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 해 7월 부상 복귀전에서 생애 첫 꼴찌를 했고, 소속팀을 찾았지만 차갑게 거절당했다.

'비운의 투수' 염종석(41·롯데 코치)의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어깨와 팔꿈치 사진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어깨와 맞바꾼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자신에게 아시안게임이 한국시리즈처럼 중요했다.

사재혁은 태릉선수촌 근처에 원룸을 잡고 지옥훈련을 했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77kg급에서 합계 340kg로 3관왕에 올랐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안울었는데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사재혁은 올해 85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땄다. 대회 직전 만난 사재혁은 자신을 "지옥에 다녀 온 도전자다"고 표현했다.

과도한 훈련으로 팔꿈치 통증을 느낀 사재혁은 불안한 마음에 병원을 찾기도 했다.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목표를 금메달로 세웠다. 한국 역도는 이번 대회에서 노골드 뿐만 아니라 노메달 위기다.

끝내 기적은 없었다. 사재혁은 믹스트존에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인 뒤 "'사재혁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2차례 참가한 사재혁은 "삼 세번은 도전해봐야죠"라며 웃었다. "언제든 멈출 생각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8전9기 도전을 생각하고 있다.

곁에서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재혁아 괜찮다. 이렇게 재기해 출전한 것만으로 넌 자랑스런 내 아들이다".

인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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