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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100년 보고 10조 베팅,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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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18면

중앙포토

“지금 이 땅을 놓치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

금싸라기 한전 부지 꽉 거머쥔 ‘九’의 결단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를 앞두고 정몽구(76·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열망은 깜짝 놀랄 인수금액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10조5500억원. 7만9342㎡ 부지를 3.3㎡(1평)당 4억3880만원에 산 셈이다.

인수 의지는 입찰 보증금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은 9999억9999만9999원을 입금했다. 정 회장의 이름에 있는 ‘아홉 구(九)’ 자로 보증금 액수를 정했다고 한다. 보증금은 입찰가의 5% 이상을 내면 돼 10조5500억원을 쓸 경우 5275억원을 내면 되지만 4000억원 이상 더 입금했다.

정 회장은 이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연간 1000만대 가까이 생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으나 그동안 사옥이 좁아 불편을 겪어왔다. 서울에 있는 30여개의 현대차그룹 계열사에는 직원 1만8000여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양재동 사옥에는 5개사 5000여명만 수용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수 부지에 초고층 신사옥과 자동차 테마파크 등을 지을 방침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차는 “100년을 내다 본 투자”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인수 결정 이튿날인 19일 직원들을 격려하면서 “사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아니라 정부한테 사는 것이어서 (금액을) 결정하는 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고가 매입 논란과 함께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인수 결정 당일 현대차 주가는 전날보다 9.17% 하락한 19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계열사 주가도 동반 하락해 현대차그룹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8조4000억원이 줄었다. 이튿날에도 현대차·현대모비스는 1%대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고 기아차만 0.92% 상승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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