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곡가.임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의 줄기를 물가안정에 두고 있다.
내년 물가상승선을 10~14%로 잡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자세다.
올해 물가상승목표가 20%선인것에 비하면 매우 의욕적인 물가정책의 설정이다.
이에는 정부는 물론, 기업.가계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버리는데 따른 욕구의 자제가 긴요하다.
한국경제의 고질은 국민경제 각부문에 끈질기게 침투하고있는 인플레이션 기대감에 있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새해의 물가정책기조를 이를 무디게 하는데도 모아야할 것이다.
그동안 논란이 거듭되었던 추곡수매가 인상율이 14%에 그친 것은 농가의 영농비부담 증가를 알면서도 물가안정이라는 국민경제의 절실한 요청 때문에 결정된 것이 아닌가.
정부의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기업.가계가 물가인상요인의 제거에 동조해야 한다는 명제가 입증된 것이다.
따라서 농가의 추곡수매가와 마찬가지로 기업.노동자의 경영합리화와 임금인상의 적정한 대응책이 다음의 과제로 남는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의 초임인상 경쟁은 기업의 임금책정방식이 또다시 무모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인플레이션의 압력속에서 해마다 정기승급이외에도 각종 명목의 지급을 더하는 「베이스.업」과 같은 변칙적인 임금체계를 형성해 왔다.
거기에다 일시적인 고용경쟁을 벌여 초임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는다는 것은 눈앞만 보고 먼 장래는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
초임경쟁에서 오는 폐단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초임경쟁은 전반적인 임금체계의 개선과는 동떨어진채 고용인원 확보를 위한 미끼로만 이용될 뿐이다.
실제로 호봉차이가 불과 몇천원에 불과하여 기업경영에 숙련된 인력으로 하여금 소외감과 좌절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가 의욕을 갖고 기업에의 귀속의식을 길러 땀을 흘리려할 것인가.
대기업의 초임경쟁이 전반적인 임금체계를 왜곡하는데 더하여 각 기업의 근로자 스카우트전도 또하나의 역작용을 일으킨다.
필요한 일손이 모자란다고 해서 타기업의 종사자들을 임금인상조건으로 끌어들이는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다.
임금경쟁을 통해 기업간의 근로자 이동을 일으키면 언제 기술을 습득하고 축적하여 성장력을 기를수 있겠는가.
종신고용을 하려고해도 기업인과 근로자자신의 허물로 인해 할 수가 없게된다.
근로자의 이직율이 높은 것은 경계해야만하나 기업.근로자 스스로에 의해 촉진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당국이나 기업이 근로자의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토록 요청하고 있는 것은 임금인상분이 기업제품원가에 영향을 미쳐 결국은 상품.서비스가격 이상으로 나타나는데 있다.
근로자는 임금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았다고 여기게되나, 계속되는 인플레이션에 말려들어 실질임금은 또다시 뒤떨어지게된다.
결국 임금과 물가와의 악순환이 남을뿐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의 자제라는 단기적인 고통을 감수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함으로써 장기적인 실질임금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경제정책과 기업, 근로자의식도 성숙해야할 때다.
언제까지 잔재주를 부리는 경영을 하고 또는 기업의 성장력은 아랑곳없이 당장의 임금에만 현혹되는 후조근로자가될 것인가.
물가안정은 경제정책만으로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농산물가격의 안정과 연결된 농가의 고통분담, 임금적정선유지, 기업의 품질관리, 기술혁신노력등이 조화되어야만 한다.
인플레이션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국민경제의 번영은 모래위에 쌓은 성과 같은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