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진열 바꿔 구매욕 자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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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백화점이 문을 열기 전, 문을 닫은 뒤, 그리고 백화점 휴일에 주로 일을 합니다. 보장 이곳 저곳의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죠.』 진열용 망치와 핀등 온갖 공각도구를 옆에 차고 높은 사닥다리 위에서 접착용 핀의 핸들을 찰칵찰칵 누르며 매달려 있는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김경숙씨(27). 그녀의 일과는 백화점 전 보장에서 이루어진다.
주로 진열에 경험이 많은 인원으로만 충당되었던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 본격적인 「보장디자이너」 전문인을 채용한 것은 작년 9월 신세계 백화점이 그 시초였다.
아직은 귀에 생소한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는 종래의 정리·정돈을 하는 진열의 의미에서 한걸음 나아가 상품의 특징이나 기능을 나타내기 위한 구도와 구성을 연출하여 미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출신인 그녀는 73년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파리에 건너가 2년간 아틀리애에서 그림실기와 언어를 익혔다. 76년 에콜드아트스모던 대학에 입학하여 디스플레이(보장전시)를 전공,졸업후 프랭탕백화점에서 본격적인 서구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익힌 뒤 80년 7월 귀국, 이제 1년 3개월이 지났다.
『한국을 떠나 외국거리를 다니면서 늘 「왜 거리의 분위기가 이토록 자유롭고 환상적인가」 란 문체를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파리시가에 즐비한 점포들의 쇼윈도였고 그 속의 전시가 그때그때의 유행색감이나 모드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전공으로디스플레이를 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디스플레이는 일반 대중에게 점포의 이미지와 상품의 기능을 소개함으로써 판매촉진뿐만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생활 아이디어 제공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결국 지혈된 새로운 상품을 실제 가정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어 선택된 물건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판매자와 소비자간의 욕망을 연결해 주는 수단인 것이다.
『프랑스의 프랭탕 백화점 쇼윈도에 새로운 상품인 「만능치마」 를 소개할 때의 일입니다. 직접 한 모델이 쇼윈도를 누비면서 홈드레스·파티복·원피스등의 여러 형태로 변형하여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벌의 치마가 그냥 걸려 있었다면 이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그 한가지 경우로서만 활용했겠지만 이 실물 디스플레이의 도움으로 소비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판매자는 구매욕망을 일으켜 판매충동으로 이끌어 주는, 그 일이 제가 맡아 해 나가야 할 작업인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날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속에서 생활 아이디어를 얻어내기 보다는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그 많은 상품을 동시에 봄으로써 판단력마저 혼돈되는 실정이라고 김씨는 지적한다.
신세계백화점 전 매장이 그녀의 일터임에도 불구하고 1m58cm의 자그마한 그녀의 몸은 지칠줄 모른다.
문이 닫혀 있는 동안에만 일할 수 있다는 직업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그녀의 생활반경은 늘 보통 사람들과 뒤바뀌어 있다.
더우기 고유명절, 4계절의 변화, 어린이 날, 크리스머스 행사, 세일등의 정기적인 행사 동안은 그녀가 지시하는 디스플레이 구성과 방향으로 즉각 전 매장 구석구석에서 하나둘씩 그녀의 지혜가 발휘된다.
지난 9월 회사원인 김승곤씨(28)와 『너무 좋아 그냥 결혼했다』 는 그녀는 지금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결혼했다고 해서 큰 변화는 없습니다. 꾸준히 출근하고 여러번 뜯었다 붙었다 하는 도깨비 놀음도 계속하고요』
하루 빨리 많은 디스플레이 전문가가 나와 백화점뿐만 아니라 길가의 모든 점포에서도 생활의 필수요건으로 디스플레이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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