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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 어르신 돕는다, 60대 한글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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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면수씨는 교사로 일하고 은퇴한 후 문맹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다산연구소는 은퇴자들의 인생 2막을 돕기 위해 ‘인생나눔교실’을 시작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 앞말에 받침이 있으면 ‘은’일까요, ‘는’일까요?”

 16일 오전 인천 만수동의 만월종합사회복지관 강의실. 김면수(63)씨가 칠판 앞에서 물었다.

 “아이고, 가만 있어봐. 형님, 기억 나슈?” 강의실의 학생 6명은 68~81세다. 젊어서 글을 배우지 못한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매주 화·금요일 오전에 수업을 듣고 있다. 기역·니은도 몰랐던 그들이 이제 조사의 쓰임새까지 진도를 떼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은퇴한 전직 교사다. 초등·중학교에서 39년간 근무하고 마지막 8년 동안 초등학교 교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은퇴 후엔 성인에게 글을 가르치는 문해(文解) 교수법을 공부해 3월부터 이 복지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은퇴 직후 세웠던 계획은 좀 더 평범했다. 그는 “은퇴하자마자 동네의 노인종합문화복지관에 가봤다”고 했다. 볼링·붓글씨 같은 프로그램이 잘 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로 70·80대인 노인들 틈에 낄 수가 없었다. 은퇴는 했지만 아직 젊고 건강하니, 노년을 돕는 노년이 되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김씨는 이제 ‘노노(老老) 케어’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그는 “은행에 가도 혼자서는 입출금증을 쓸 수 없고, 버스도 제대로 골라 탈 수 없었던 어르신들이 이제 자신감 얻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또 “주위의 은퇴자들을 보면서 시간 많을 때 뭘 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생각을 한다”며 “오랜 기간 일하며 얻은 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처럼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진다. 한국도서관협회·다산연구소가 진행하는 ‘인생나눔교실’이 다음 달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생나눔교실’은 은퇴자가 멘토로 활동하며 경험과 전문지식을 나눌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인생 전반부의 경험을 사회에 나누도록 제도적으로 돕자는 취지다.

 절차를 거쳐 선발된 멘토 200명은 각 지역 문화원·도서관·병영·학교 등에서 강의·토론을 하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일했든 상관없다. 문학·철학 등 인문학, 문화·예술은 물론 생활습관·건강·진로설계와 같은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식 전달뿐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의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멘토의 나이 제한도 없다. 강의 대상도 지역주민부터 학생·노년층·재소자·군인 등으로 폭넓게 계획돼 있다. 다산연구소의 김학재 실장은 “1955~63년생 취업자 700만여 명이 ‘썰물 은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전문성은 갈 곳이 없다. 경험과 지혜를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할 필요에 따라 시작하게 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멘토 지원서는 23일까지 우편 혹은 e메일로 받는다. 은퇴자 혹은 은퇴예정자가 신청할 수 있고 지원서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도서관협회·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으면 된다. 서류 전형 통과자는 이달 말 면접을 거쳐 선발되며 멘토 교육 후 다음 달 중순부터 3개월간 활동하게 된다. 활동에 따라 강의료도 지급된다. 문의 한국도서관협회 070-8633-8140~3, libsharelife@naver.com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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