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수익 비중, 국민은행 2% 미쓰비시는 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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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국민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1168개에 달한다. 시중은행 중 단연 1위다. 그러나 해외 점포는 12개뿐이다. 우리은행(23개), 신한은행(19개)에 비해서도 초라하다. 이러니 해외에서 거두는 수익 비중도 전체의 2%(1분기 기준)에 불과하다. 역시 신한(6.5%), 우리(4.1%)에 못 미친다. 국민은행이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건 2008년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 실패의 ‘트라우마’가 한몫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바람에 편승해 당시 강정원 행장이 산유국 카자흐스탄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BCC은행 지분 41.9%를 사들였다. 그러나 이 은행이 부실해지면서 국민은행은 지금까지 8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봤다. 금융 당국의 중징계가 예상되자 강 전 행장은 중도 사퇴했다. 이를 지켜본 KB그룹 후임 경영진은 해외 진출을 기피했다. 대신 국내 영업에 몰두했지만 저금리가 장기화하자 영업이익은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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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도쿄미쓰비시UFJ는 지난해 태국 5대 은행 중 하나인 아유다를 56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러자 스미토모미쓰이은행도 인도네시아 국립저축은행을 16억 달러에 사들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와 고령화로 국내 수익기반이 허물어지자 일본 은행들은 앞다퉈 동남아로 진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미국·유럽 은행들이 철수한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도쿄미쓰비시UFJ는 지난해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53.3%)을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일본 대형 은행의 자기자본이익율(ROE)도 꾸준히 올라가 2012년 이후 한국 은행들을 추월했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일본 금융사들이 한국보다 자금을 싸게 많이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해외에서도 담보 위주 대출이나 단순 무역금융에 치중하는 국내 은행과 달리 일본 은행들은 현지 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에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과 일본 은행의 입장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1998년 외환위기라는 매를 일찍 맞은 한국의 은행들은 잇따른 합병과 구조조정으로 체력을 회복했다. 업종 간 칸막이를 뛰어넘으려는 미국 금융회사를 본떠 앞다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덩치도 키웠다. 그러나 겉모양만 선진 금융을 베꼈을 뿐 ‘대마불사’ 함정에 빠져 체질 개선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허울뿐인 지주회사 제도가 대표적이다. 선진국 금융그룹은 업종 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시너지를 얻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택했다. 지주회사는 은행·증권·보험과 같은 회사별로는 물론이고 소매·도매·자산관리와 같은 부문별로도 계열사를 쪼개볼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바탕으로 총사령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은행이 지주 전체 매출의 8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에선 애초부터 이 같은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금융 당국의 규제나 감독조차 여전히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업권별로 하는 ‘칸막이’ 형태 그대로다. 마치 백화점을 만들어놓고 영업은 식품·전자·의류 코너를 따로따로 하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에 각기 다른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니 회장과 은행장 간 알력과 권력투쟁이 빈발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경영진에게서 해외 진출이나 미래 먹거리 같은 장기 비전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은 살리지 못한 채 옥상옥을 만들어 비효율만 양산한 격이 됐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지주사 회장과 행장을 겸하도록 하고 규제 칸막이도 좀 낮출 필요가 있다”며 “최소한 지주와 은행장에 각기 다른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인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감독 당국이 새로운 감독기법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전 ‘깨알 규제’에 안주하고 있는 국내 금융 당국도 금융 혁신의 걸림돌이다. 이른바 ‘모범 규준’과 ‘가이드라인’으로 포장된 규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신용카드사가 많지만 대출금리나 수수료가 마치 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건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조금만 금리가 높다는 목소리가 나오면 당국에서 낮추라는 지침이 내려온다”며 “똑같은 상품을 팔 바에야 카드사가 여러 개일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지난해 국민은행에서 각종 사고가 불거지자 금감원은 영업점은 3년, 본점은 4년 이상 한 군데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은행 내규에 반영토록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3년마다 순환근무를 시키면서 어떻게 지역 중소기업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하는 ‘관계형 금융’을 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조민근·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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