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갈 길 멀어 … 사제단, 하던 일 계속할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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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11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조용한 40주년을 준비 중이다. 10년 전 30주년 행사 때에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과 심포지엄을 했지만 올해엔 장소를 서울 명동성당으로 정했다. 오는 22일 기념미사를 한 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평가와 전망’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정의구현사제단 전 총무 김인국 신부

 지난 4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천주교 단식기도회’를 마친 사제단 나승구 대표신부는 중앙SUNDAY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단식 후 회복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사제단 총무를 지낸 김인국(옥천성당 주임신부·사진) 신부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신부는 40주년을 맞는 소회에 대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라고 했지만 부족한 게 많고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사제단은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사제단에 대한 비판과 조언에 대해 때론 날 선 표현으로, 때론 적극적인 설명으로 응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제단이 과도하게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참여가 대단한 게 아니다. 쌀 떨어진 사람에게 뒤주 속 쌀을 퍼 주는 게 사회참여다. 수해 입은 사람에게 라면 갖다 주는 적십자사와 다를 게 없다. 정치참여는 위험한 일이라는 반감이 있는데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먼 생각이다.”

 -사제단의 방법론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 않다.
 “민주주의가 됐는데, 독재정권도 없어졌는데, 사제들이 세상일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도식을 갖고 우리를 비판한다. 그런 주장을 할 때에는 꼭 1987년을 기점으로 사제단이 이전에는 암흑 속의 횃불이었는데 이후는 초심을 잃었다고 한다. 그들이 87년 이전에는 사제단 활동을 반겼느냐.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70년대, 80년대 정신으로 살 거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주의의 진전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지금은 저강도 전략이다. 문자 보내서 해고 통보하면 끝이다. 고문실 데려가서 피 튀길 필요가 없는 거다.”

 -사제단이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우린 사제로서의 사명에 충실할 뿐이지, 득표전략엔 관심 없다. 좌고우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사제단이 불친절하고 독선적일 순 있다. 세월호 가족들이 울고 있으면 같이 울어주고, 노동자들이 비 맞고 있으면 같이 맞아준다. 그게 우리 일이다. 일일이 설득할 시간이 없다. 죽게 생긴 사람 구해주는 게 우선이지.”

 -종교인으로서 중재나 화해의 노력이 있어야 하잖나.
 “넓게 보면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용산, 세월호 가족들이 맞고 있으면 때리지 말라고 하지 않나. 교황님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세월호 가족의 손을 잡은 것도 중재 노력이다.”

 -사제단에 대해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반에 힘없는 학생들이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반장이 방관하고 있다고 치자. 한 학생이 나서서 일진이나 반장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의로운 일이다. 그랬더니 일진이 ‘왜 우리한테만 그래, 옆 반은 더 심한데’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도 북한 문제를 걱정하고 고민한다. 다른 반 일이라 해서 우리랑 상관없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반 문제를 희석해선 안 되지. 그런 주장 하는 사람들이 정말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인권이란 가치에 무게 두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정말 북한 주민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 현실에 침묵하란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닌가. 사제단은 1차적으로 가까이 있는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갖겠다는 거다.”

 -사제단이 좌경화됐고 종북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이 있다. 신자 사이에서도 사제단을 유물론자들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의구현은 하느님이 계시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위한 사제단이란 뜻이다. 정의구현은 신앙고백이고 정의구현 없이는 십자가도 없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교가, 사제가 성립할 수 있나. 우리더러 좌파라 불러도 좋고 빨갱이라 불러도 좋다. 세상에는 다름이 존재한다. 우린 그걸 인정하고 존중한다. 우리가 유물론자라고? 먹고 싸는 데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 식색(食色)에 충실한 자들이 유물론자다. 사람은 그것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연민과 공감과 나눔과 섬김의 가치로도 산다. 그걸 인정하는 게 신앙이다. 그런 것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유물론자지.”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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