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장에서 벌어진 진흙탕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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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NC전에서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심판이 직접 삽을 드는 촌극이 일어났지만, 결과는 10-10 9회말 강우 콜드 게임 무승부. 허탈한 결말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가늘게 내리던 비는 경기 후반 굵어지기 시작했다. 물기를 먹은 마운드의 흙은 질퍽해졌고, 투수들은 스파이크에서 흙을 털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9회 초가 되자 제대로 경기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6-6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삼성 마무리 임창용(38)은 9회 초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며 볼넷을 내줬다.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 때 류중일(51) 삼성 감독은 심판진에 질퍽한 마운드 상태로 정상적인 투구가 어렵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를 그대로 끝낸다면 강우 콜드 무승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를 맞은 NC에게 불리했다. 결국 임창용은 NC 이승재(31)에게 3타점 3루타를 내줬고, 타자 주자까지 홈을 밟았다.

하지만 9회 말 NC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10-6으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한 NC 마무리 김진성(29)은 삼성 박한이(35)에게 2점 홈런을 내줬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렸다. 10-8 무사 1, 2루가 된 상황에서 김경문(56) NC 감독은 경기 중단을 강하게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심판진은 직접 삽을 들고 질퍽해진 흙을 퍼냈다. 하지만 NC는 2점을 더 내줬고 결국 10-10 동점이 됐다. 그제서야 강우콜드 게임이 선언됐다.

김경문 감독의 어필이 받아들여졌다면 경기 서스펜디드 경기 선언이 가능했다.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조건에서 경기를 속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심판진은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판단 앞에서 주저했다. 감독들 눈치만 보다 판단을 미룬 것이 결국 화근이 됐다. 양 팀 모두 진흙탕 싸움에서 헛심만 쏟아 부은 꼴이 됐다.

대구구장 마운드도 문제였다. 그동안 대구구장 마운드는 악명이 높았다. 지난 2012년 7월 27일 SK와 삼성의 경기에서 이만수 SK 감독은 투수 박희수의 발목이 삐끗하자 직접 삽을 들고 마운드에서 흙을 고른 일도 있었다. 마운드 높이가 낮고 홈이 깊게 파여 있어 투구에 악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많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은 구장 보수공사를 했다. 그동안 문제가 됐던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그리고 1·2·3루 베이스의 흙을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로야구 구장은 지방자치단체의 소유다. 구장 관리를 지자체가 맡고 있어 구단이 많은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개선·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2일 대구에는 그라운드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고, 젖은 흙을 덮어줄 마른 흙도 충분하지 않았다. 급기야 심판이 직접 도구를 들고 마운드를 정비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1948년 개장한 대구구장은 국내 프로야구 구장 중 가장 오래된 탓에 그동안 말썽이 많았다. 2011년에는 조명탑 정전 사태가 발생했고, 집중호우가 내리면 더그아웃까지 물이 찼다. 리모델링과 보수공사가 꾸준히 진행됐지만 한계가 있었다.

대구시와 삼성 구단의 노력으로 2015년 12월 완공 예정인 신축 구장이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시즌까지 현재 대구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김원 기자 rasp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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