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더위지는 방은 빨리 식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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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것과 상통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권세를 위해, 명예를 위해, 재물을 위해, 혹은 초세속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목표를 달성했을 것이요, 혹은 중도에서 주저앉은 사람도 있을 법하다. 찾아 헤매어야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다른 동물의 삶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구별짓게 하는 것은 그 찾는 여정을 이성적 판단에 의해 가늠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철학자「딜타이」는 인간을 지와 정과 의의 조화로써 선명한 적이 있다. 지는 이성이다. 세계의 근원을 모색하고 나의 심연을 응시하는 예지의 빛이다.
석이란 감정이다. 가슴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감싸는 자비로운 마음씨를 가리킨다. 의란 의지이다. 설정된 목표를 향하여 난관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와 결단력이다. 이 세가지의 조화를 도모하는 일이야말로 인주의 값진 의미라고 그는 설파하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생명을 갖춘, 그것도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쉬이 더운 방은 쉬이 식게 마련이다. 젊은이들이 쉽게 사람하고 쉽게 헤어지는 것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의 쾌락에 목숨을 걸고, 도박과 모험에서 젊음의 패기를 찾으려하는 덧없는 유희를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는 철저히 우리들 과거의 유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래는 바로 현재라는 거울을 통해 현현될 수 있다. 바르고 착하게 살려는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미래가 기약된다는 평범한 인과의 윤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기와 독선과 자만에 의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은 자꾸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능성의 존재이다. 물리적 힘의 능력만으로 따진다면 인간은 자연계의 여러 동물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동물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뼘 가슴속에 전지를 삼키는 웅지를 감추고, 일념의 상념 속에 영원을 포착하는 지혜를 갖춘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기에『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사이에 하등의 차별이 없다고 했다. 8만4천의 무시법문이 밝히려 함도 이 인간의 문제요, 제불상사들이 일생을 걸고 참구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 인간의 문제이다.
참 생명의 가치를 회복해 가진 이를 불교에서는 부처라고 한다. 그러나 왜 사는 지를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생명을 중생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와 중생이 전혀 이질적인 양극의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한 이가 부처요, 그 가능성을 사장시킨 생명이 중생이기 때문에 궁극에 있어서 그 둘은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중생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나를 떠나 나를 찾으려 했고, 나와 남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면서 그것을 인간의 본능인양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 허위에 의해 빛을 잃고, 진정한 삶의 의미가 세속적 탐욕의 충족에 있는 듯이 오인되는 가치의 전도현상이 온 누리를 뒤덮게 되었다.
인류는 이제 물질적 향락과 황금의 곡예로 점철된 산업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심각하게 반성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래의 도전으로 꼽히는 자원·식량·전쟁·공해 등의 문제는 하나같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문제의 해결은 명약관화하다.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서로를 학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기 의해 태어나지도 않았다. 참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바탕 위에서 인간과 인간의 문제,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문제는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들 사이를 단절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 그들을 가로막는 몰이해와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너와 내가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는데 삶의 지혜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인 번영만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승화, 그 질적 변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만을 외하고 나만을 내세우는 이기의 허물을 벗고 동체대비 하는 자비의 이념이 모든 생명에게로 확대될 수 있어야한다.
한 생각이 맑으면 국토가 맑아지는 법. 대지를 오염시키는 끝없는 대립과 반목을 더 이상용납해서는 안 된다. 착하게 살려는 의지가 우리 시대의 지배적 경향이 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은 맑아져야만 한다. 그 맑아진 마음에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일이야말로 멋진 인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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