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꿈을 키우는 버스 안내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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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단정한 단발머리, 말쓱한 교복, 가슴에 단 배지가 마냥 자랑스럽다.
시내버스 안내양들이 여고생의 꿈을 키우는 연희청소년학교(교장 박재옥·서울신림8동1668의16).
지난15일 입학식을 끝내고 영어·수학등 학과목과 예능 과정을 한꺼번에 익히느라 여념이 없다.
이 학교에 들어간 시내버스 안내양은 모두 90명. 서울 영인운수등 30여개 버스회사 안내양들이다.
수업기간은 1년. 매일상오11시에 수업을 시작, 하오3시30분에 끝난다. 대부분의 안내양들이 하루 일하고 하루 쉬기 때문에 1주일에 2∼3일씩 출석한다.
박영난양(19·한남운수소속)은『쉬는 날 피로를 풀기 위해 잠도 자고 밀린 빨래도 해야지만 한자라도 더 배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 입학한 대부분의 안내양들은 박양과 같은 생각. 때문에 수업이 시작된 강의실은 항상 배움의 열기로 가득하다.
이학교의 교과목은 국어학·영·수학·상업·가정·일반교양 등 일반중등 학교의 전과목과 같다. 소질과 취미를 키우는 자유학습시간도 있다.
국어수업시간인 제1강실. 국어과목 담당교사는 김은형씨(여·24·중앙대문예창작과 졸업). 『언어와 민족』을 강의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들도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들이다.
이미영양(18)은 이 강의를 통해서『한민족의 부흥을 위해 국어를 가꾸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둘째 시간은 수학. 김희숙양(17)은『2차 방정식의 공식을 이해하는데 3일이 걸렸다』면서 이 공식을 이용, 까다로운 수학문제가 술술 풀릴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즐거워했다.
연희새마을학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이면 누구에게든 입학을 허용한다. 공납금은 교재 대를 포함해서 5천원. 안내양들의 경우 납입금과 교복대 등은 일체 회사측에서 부담한다.
자유학습시간의 독서토론. 30여명의 안내양들이 책상을 마주하고 둘러앉았다. 토론대상작품은「리처드·버크」의『갈매기의 꿈』. 그것은 곧 한자라도 더 배워서 푸른 창공을 날고싶은 안내양들의 꿈이다.<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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