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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강석주 유럽행 … 북 외교 공세에 난감한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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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 외교라인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9월이 되면서 더 그렇다.

 이수용 외무상(외교장관)은 이달 중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건 15년 만이다. 이 외무상은 지난 4월 임명된 뒤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를 잇따라 방문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엔 강석주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의 유럽행 계획이 포착됐다. 정부 당국자는 2일 “강 비서가 이달 초중순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한다”며 “북한 노동당과 관계가 있는 정당들과의 당대당 교류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례적인 방문으로만 치부하기엔 시기가 민감하다. 강 비서가 스위스를 방문하는 시기(11~13일경)는 일본 총리실 납치문제대책본부 수장이 납북 일본인 문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제네바를 방문하는 시기(10일)와 맞물린다. 그래서 북·일 비밀 접촉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강 비서는 북한 외교가의 거물이다. 노동당 국제비서는 우리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해당한다. 강 비서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미 정부 당국자들은 군용기를 타고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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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완을 촉구하려는 행보 같다”며 “북한 외교가 최근 공세적인 모습을 보여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재 위주의 국제공조를 중심으로 대북 외교를 펼쳐온 한국은 예상치 못한 고난도 과제를 받아들게 됐다. 북한이 도발할 때는 ‘제재 강화’라는 정답이 있지만, 북한이 외교를 시작하면 한국이 대비해야 할 시나리오는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서강대 김영수(공공정책대학원 정치외교학) 교수는 “그간 남북관계는 한 이슈로 붙은 뒤 북한이 박차고 나가면 끝나버리는 ‘단막극’이었는데, 이젠 ‘연속극’을 찍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며 “주연급 조연, 엑스트라들도 많아져 판이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90년대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처럼 남북관계를 북·미관계보다 후순위에 두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게임에서 소외되면 우리 손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던 방법이 도발 위주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외교 중심의 접근법은 새로운 시도다. 당장 북·미관계 개선이나 북핵 문제 돌파구로 이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북한이 움직이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외교를 시작하려는 것 같다”며 “북·일 협상을 계기로, 미국의 견제를 뚫기 위해 일단 외교무대에 나서 새로운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외교적으로 이리저리 뛰는 것은 최종적으론 한·미를 움직여보려는 것”이라며 “한국에 좀 유연한 자세를 취하라고 이야기해줄 다른 국가들을 모으려는 계산도 하는 것같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학부 국제관계학) 교수는 “정부는 현재의 대북 강경 마인드에서 탈피해 원칙과 함께 유연성을 발휘하는 투트랙 전략을 가동해야 할 때”라며 “유엔 총회를 비롯, 하반기에 큰 외교 이벤트가 잇따르는 만큼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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