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고수에게 듣는다] 2050 박스권에 갇힌 증시의 숙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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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P 500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넘었다. 다우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 주요국주식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시장은 박스권을 돌파할 때 기대와 달리 2050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 강세에 기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가는 형태다.

이런 차이는 실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은 3년 가까이, 유럽도 1년 넘게 최고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4% 줄었다. 3분기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가 스마트폰 보급이 일단락됨에 따라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그런 경향은 아시아에서 특히 심해 중국 시장 점유율이 1분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상황도 만만치 않다. 남아 있는 수요의 상당 부분이 200달러 이하 중저가 폰에 한정돼 있어 삼성전자가 들어갈 부분이 없다. 그 때문에 수익 전망 역시 낮아지고 있다. 애초 7조원대로 예상되던 3분기 영업이익이 최근에는 6조원대 초반까지 낮아졌다. 하락 속도도 시간이 흐를수록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줄어들 경우 이를 메울 대상이 마땅치 않다. 산업 규모를 감안할 때 화학ㆍ조선ㆍ철강 등이 대상이 돼야 하는데 업황이 좋지 않다. 작년에 삼성전자가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을 때 40%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시장 전체 이익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분기에 기업 실적이 바닥을 쳤을 거란 전망이 많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앞으로 모양은 이익이 크게 늘기보다 더 이상 줄지 않는, 그래서 증가율도 미미한 형태가 될 것이다. 당분간 이익이 주가 상승의 힘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이익이 바닥을 치고 나면 강하게 늘어나던 과거 모습이 이번에는 나오기 힘들 걸로 전망된다.

이익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시장에서 주가순이익배율(PER) 10배 이하인 종목을 찾기 힘들어졌다. 시장 PER도 10배를 넘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익이 증가한 종목은 주가가 너무 높아서, 반대로 주가가 오르지 않은 종목은 이익이 줄어서 PER이 올라가고 있다. 주가에 대한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이익 증가가 꼭 필요하다. 정책 영향력 차이도 주가 차이를 가져오는 원인이다.

지난 5년 동안 모든 정책은 선진국에서 시작됐다. 금리 인하가 미국과 유럽에서 이루어졌고, 양적 완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 역시 두 지역에서 시작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책 효과의 상당 부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최근 우리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내용으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선진국만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후 시중 금리 하락 폭이 정책 금리 하락 폭보다 작았다. 금리 인하가 한 번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일부 반응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지속성이 얼마나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정책에 의해 경제 흐름이 바뀌려면 유사한 정책이 몇 차례 더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두 번 시행에 그칠 경우 정부가 경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순 있어도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선진국 경제 정책이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2~3년간 반복 시행을 통해 효과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정책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을 경우 한국은행이 정책 금리를 1%대까지 낮출 정도로 강도 있게 정책을 펼 거라고 투자자들이 확신할 경우 우리 시장에서도 정책에 의한 주가 상승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 정책이 시작됐으므로 투자자들은 당분간 후속 정책 여부와 효과를 지켜볼 것이다.

외국인 매수 뜸한 것도 우리 시장 자체 문제 때문
외국인 매수가 뜸해졌다. 상반기 내내 외국인이 수급 균형을 맞춰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불안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글로벌 유동성 규모나 역할이 의심받을 정도로 바뀐 건 없다. 미국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빨라야 내년 2분기쯤 첫 번째 조치가 단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선진국중 어떤 곳도 두드러지게 유동성을 회수한 곳이 없다. 이렇게 보면 외국인 매수 둔화는 국제적인 자금 흐름이 바뀐 것보다 우리 시장 자체 요인 때문으로 보는 게 맞다. 지난 7~8월 국제 자금 흐름은 독일과 대만 등지에서 빠져 나온 돈이 우리 시장과 홍콩으로 들어오는 형태였다. 두 지역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달러화로 환산한 종합주가지수가 2011년 고점 수준에 도달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시장에 자금을 넣어야 할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 비슷한 경우가 대만에서도 나타났다. 달러화 기준 대만 주가가 2011년 고점에 도달하면서 외국인 매수가 줄어든 경험이 있다. 미국의 3차 양적 완화가 마무리되는데 따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10월에 양적 완화가 끝나면 시차를 두고 유동성 흡수가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 달러가 다른 통화에 대해서 강세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국내 시장으로 돈이 들어오는 걸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8월에 주가가 박스권을 돌파하면서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아직까지 그 기대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박스권 돌파는 유동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주가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펀더멘털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경기와 기업실적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가 작년 3월에 저점을 찍었으니까 회복이 시작되고 1년 이상이 지났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꺾인 것도 아닌데 부양책이 나온 걸 보면 정부가 경기 회복이 힘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주식시장이 본격 상승하려면 난제들을 넘어야 한다. 당분간 주식시장은 장애물을 치우면서 힘겹게 올라가는 상황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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