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방황하는가(10) 뿌리깊은 불량서클 "공부 잘하자"고 시작, 술·담배하며 타락 일부 여학생들은 남학생「서클」과 자매결연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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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동대문밖 신설동 골목에서 과일행상을 하는 최모씨(28)는 10여년전 서울 A고교 재학시 폭력서클의 우두머리로 청량리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흐르는 세월 따라 최씨는 충실한 생활인이 됐다.
그러나 당시의 친구들 가운데 3명은 작년겨울에 모 일을 저질러 교도소에 갔고 2명은「둥기」(기둥서방)로 지금도 창녀촌을 맴돌고있다. 영태(가명·27세)만이 건설기능공으로 중동에 나갔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제 와서 후해해도>
최씨는 그 때를 생각하면 자신이 몇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가책도 들고 철없던 때의 일이 저주스러워 이따금 술로 밤을 잊는다. 밑바닥 삶이 괴로와「망할 놈의 세상」하고 외쳐보지만 잘못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 이젠 성인이 된 그들을 걱정해줄 사람도 없다.
청소년들은 정서적인 불안을 메우기 위해서도 짝을 찾고 집단을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느끼는 이질감이 동류의식을 찾아 같은 또래집단을 찾게 만든다. 서클은 이렇게 생긴다.
그러나 청소년의 서클 하면 불량서클을 연상하게끔 사회의 눈은 가시가 돋쳐있다. 청소년들의 불량서클은 74년 고교평준화이후「깡패학교도 없지만 깡패 없는 학교도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되고 활동무대도 종전의 학원중심에서 유흥가나 적선지대로 행동반경이 옮겨진 현실이다.
작년 6월 어느 날 오후 종로구 창신동 538일대. 저마다 칼, 삼각목, 쇠줄 등으로 중무장(?) 한 10代 30여명이 중국무술영화의 한 장면처럼 찍고 때리는 유혈극을 벌였다. 길가의 노점들은 황급히 문을 닫았고 싸움은 누가 말려서가 아니라 한쪽이 힘에 밀려 달아나고서야 끝이 났다. H공고「백경파」와 거리의 청소년조직「8통파」의 대결이었다. 경찰에 검거된 8통파 5명은 넉달전에 이미 한번 검거돼 가정법원의 1호 처분(부모인계조치)을 받고 풀려난 10대들이었다.
『사회가 우리들을 버렸으니 우리도 사회에 대항하겠다』는 그들의「단가」처럼 그들은 닥치는 대로 찌르고 부쉈다.
일선교사들에 따르면 불량서클은 한 학교에 대개 2∼3개씩. 경찰추계로도 서울시내에만 3백여개에 이른다.
여학교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같은 현상. 영등포의 N여고에는「클레오파트라」「꽃신」 등 서클이 있어 디스코클럽과 유흥장을 드나들고 예사로 남학생 서클과 자매결연을 한다.
불량서클도 처음엔 건전한 목표에서 출발한다. 용산구 Y중학교 최낙준 교사는 『대개가 「공부 열심히 하자」는 등 건전한 명분으로 시작하지만 어울려 우쭐대다 보면 담배와 술을 배우고 타락해 폭력집단이 된다』면서『그들을 전담할 지도교사만 있어도 지금 같은 불량서클의 난무는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건전한 서클활동방안을 청소년에게 장려하는 사람도 없고 간혹 있다해도 참여의 기회가 적다는데 있다.
지난 3월초 서울강북의 S고교 1학년 교실풍경.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특별활동가입을 받는 날이었다. 65명의 학급생을 14개의 그룹으로 나누자니 등산과 사진반· 문예반 등에 희망학생이 너무 많았다.
그러자 담임 김모 교사는 번호순으로 5∼6명씩을 끊어 특활반 배점을 일방적으로 끝내버리고 아연해하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교실을 나가버렸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교의서클로 보이스카웃과 청소년 적십자반만 인정하고 있다.
서울청량리의 K고교 박모 교사는『주1시간 배점된 특별활동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학교는 서울시내에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학생 수는 많은데다가 재원과 지도교사의 부족, 진학위주의 수업방침 등을 그 이유로 들고,『불량서클을 구성한 문제학생을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무우쪽 자르듯이 제거하는 실정』을 걱정했다.

<강압보다는 선도를>
J고교 2년 조모군(17)은 국민학교때는 보이스카웃이다, 캠핑이다 하면 학교나 부모들이 극성스러울 정도까지 참여를 권장하다가도 중학생만 되면 이런 경향이 훨씬 줄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교외활동을 위험시하는 태도로 바뀌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YMCA의 청소년담당자 홍영자씨는『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서클활동이 건전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룹을 짓는 것은 선도해야할 일이지 강압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바람직한 사회적응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도 청소년들에게 개성에 따라 마음껏 친구를 사귀고 취미에 맞춰 합께 활동할 수 있도록 과외생활의 영역이 마련되고 지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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