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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반납하고 국감 준비했는데 … 수십억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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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사상 첫 분리국감이 사실상 무산됐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이 비어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 26일 오전 11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2명이 도시락 100여 개가 담긴 카트를 밀며 국회 의원회관 5층의 한 의원실에 들어섰다. “도시락을 이미 주문해 놨는데 취소가 안 돼서…”라며 의원실 한쪽에 도시락 7개를 쌓아 두고 갔다. 2명은 이렇게 의원실을 돌며 주문하지도 않은 도시락을 슬며시 놓고 떠났다.

 1차 분리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던 26일 국회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LH는 국감에 대비해 1500인분의 도시락을 주문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국감이 하루 전에 취소되면서 도시락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몰라 전 직원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남은 것은 의원실에 배달하고 말았다.

 국감 무산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합의에 실패하면서 모든 국회 일정이 꼬였다. 환경부 등 일부 부처는 여름휴가까지 반납하고 국감을 준비해왔으나 ‘국감 모드’로 비상대기하는 기간만 늘어나게 됐다. 을(乙)을 위한다는 야당의 갑(甲) 노릇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다.

 국감 연기비용도 만만찮다. 26일부터 국감이 예정돼 있던 보건복지부는 이미 3000만원 가까운 준비 비용을 지출했다. 부처 내 회의실을 국감장으로 세팅하느라 대형 스피커, 앰프 등 방송장비를 임대하는 데 돈이 들어갔다. 그러나 전원 한 번 켜보지 못하고 하루 만에 장비를 철수시켜야 했다. 여기에 식당 예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의원, 보좌진, 속기사 등 국회사무처 직원까지 120명분으로 식당을 예약해 둔 상태였다”며 “1인당 1만5000~2만원 정도의 점심·저녁 식사를 이틀간 제공할 예정이었는데 취소수수료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안행부 역시 방송장비 임대료, 자료 인쇄 비용 등으로 4350만원 정도를 썼다. 안행부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국감체제에 돌입해 국회의 자료 요구에 응해왔다”며 “국감이 연기되면 그만큼 자료 요구 기간만 늘어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만큼 한 번 더 준비해야 한다는 건데 힘이 드는 건 둘째 치고 부담이 정말 크다”고 하소연했다.

 1차 분리국감 피감기관은 398곳이다. 이런 식으로 피감기관이 날린 예산은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피해액을 집계했더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1차 피감기관 60곳에서 지출한 비용이 1억원이고, 법사위 피감기관은 5500만원에 달했다”며 “전체로 보면 1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국감 준비에 매진하느라 매출 증대 업무엔 소홀하면서 생긴 무형의 피해도 크다”고 토로했다. 국회 예산에도 손실이다. 해외 국감을 제 일정에 하지 않으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경우 비싼 항공편 위약금을 스스로 물어야 한다.

유가족 동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오른쪽)이 단식농성중인 문재인 의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새정치련 장외투쟁 2일째=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포함해 소속 의원 60여 명이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집회 신고를 내지 않아 ‘1인 시위’밖에 할 수 없었다. 1인 시위자는 발언을 할 수 없다. 결국 ‘침묵 시위’가 됐다. 9일째 단식농성 중인 문재인 의원은 시위 장소를 돌며 박영선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 의원에게 인사했다. 문 의원은 “원래 여기(광화문 단식농성장)는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니니까 그럴 만한 상황이 되면 당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외투쟁을 결의한 지난 25일 의원총회엔 100여 명의 의원이 참석했으나 이날 시위 참가자는 소속 의원(130명)의 절반에 못 미쳤다.

 국회 예결위원회에서의 철야농성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당내에서 반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소속 의원 전원이 철야농성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 상임위별로 돌아가면서 하기로 수정했다.

김경희·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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