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 멎은 가자 지구…'평화의 시대'는 요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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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재위 기원전 336~323)도 탐냈던 지중해 옆 비옥한 보리밭.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약 2300년 전 가자 지구의 모습이다.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ㆍ요르단 사이의 전략적 요충인 가자 지구에선 지난달 8일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교전으로 2139명이 목숨을 잃었다.

26일 오후 7시(현지시각) 이스라엘ㆍ하마스 양측이 합의한 무기한 휴전 협정이 발효하면서 가자 지구엔 폭격 소리 대신 ‘신은 위대하다’는 환호성이 넘쳤다. 양측은 유혈사태 이후 정전 합의를 자주 파기해왔지만 이번 휴전 합의는 27일 현재 지켜지고 있다. 교전 피로감이 누적되는데다 민간인 사망자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정전이 항구한 평화로 이어질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26일 휴전을 강력 지지한다면서도 “휴전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일 뿐”이라며 “예전에도 휴전은 있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더 많은 시험대가 있을 거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가자 지구의 평화가 어려운 과제라는 건 역사가 입증한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중동지역학 교수인 장피에르 필리외는 뉴욕타임스 26일자 기고문에서 가자 지구를 ‘역사의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역 정세의 희생양이 되기 전까지 가자 지구는 비옥함의 상징으로 회자됐다”며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제국간 충돌의 장이 됐다”고 분석했다.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 서쪽 끝이 가자 지구였고 나폴레옹(1769~1821) 역시 가자 지구에 점령 깃발을 꽂았던 적이 있다.

20세기 중반 연속된 중동 전쟁으로 가자 지구 주민에겐 고난의 시대가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가자 지구가 속한 팔레스타인의 통치권은 오스만제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갔다. 48년 3월15일로 시한을 적시한 위임 통치였으나 바로 이날 제1차 중동전쟁이 터진다.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집트 군대가 가자 지구로 들어왔고, 이듬해인 49년 이집트ㆍ이스라엘 휴전협정으로 오늘날의 가자 지구 경계가 확정된다. 필리외 교수는 48년부터 67년까지를 ‘통곡의 시대’라고 칭했다. 이 기간 중 가자 지구의 주인은 이집트→이스라엘(56년)→이집트(57년)→이스라엘(67년)으로 네 번 바뀐다. 모두 전쟁을 통해서였다.

통곡의 세대를 지나 67년부터는 두 번째 ‘굴복의 시대’가 시작된다. 가자 지구를 손에 넣은 이스라엘이 21개의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고 이스라엘인을 거주시킨다. 팔레스타인측은 이를 ‘불법 점거’로 규정해 철수를 요구한다. 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미국의 중재 아래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받아들이고 평화적 공존을 서약한 ‘오슬로 합의’로 굴복의 시대는 끝이 난다.

이때부터는 세 번째 ‘봉기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자국민과 정착민 보호를 위해 배치한 군 병력까지 완전철수했지만 불씨는 남았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정파 하마스가 온건파 파타와 갈등을 빚고, 2007년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지난한 싸움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필리외 교수는 “2008년 이후에만 이스라엘ㆍ하마스간 교전이 세 번”이라며 “양측 모두 상대방을 군사로 제압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다”고 꼬집었다. 그 망상의 희생자는 가자 지구 주민이다.

최근의 유혈사태가 지속된 50일 후 가자 지구는 파손된 건물과 난민으로 가득하다. 휴전안은 가자 지구 봉쇄를 풀고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모호한 문구로 가득하다. 이스라엘은 휴전안을 둘러싸고 분열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안을 내각 투표에 부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하마스와 끝장을 보자”는 극우강경파 장관들의 반대가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게 26일 이스라엘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강경파 우지 란다우 장관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다는 거냐”며 네타냐후 총리를 맹공했다. 필리외 교수는 모든 망상에서 벗어나 ‘가자 지구 주민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오슬로 협정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래야만 네 번째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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