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군 장교 자원한 SK그룹 회장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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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 민정(23)씨가 해군 장교가 되겠다고 자원했다. 재벌가 여성 자제의 장교 지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민정씨는 4년제 대졸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117기)에 지원해 면접과 신체 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면접에선 영국의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도전 정신과 리더십에 감동받아 해군을 지원했다고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섀클턴은 탐험선 인듀어런스호가 2년간 남극에 갇힌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 전 대원을 무사히 귀환시킨 인물이다. 민정씨의 합격 여부는 29일 가려지지만 그에 관계없이 아름답고도 당찬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최종 합격하면 그는 3개월간의 군사 훈련을 거쳐 12월 초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의무복무 기간은 임관 후 3년이다. 해군 사관후보생 훈련은 고되기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그는 모집 병과 중에서 항해병과를 지원했다. 고속정이나 초계함 등 전투함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해군 관계자는 밝혔다. 해군 전체 장교에서 여군이 차지하는 비율은 6.6%다. 간호병과를 제외한 해군 내 여군 최고 계급은 소령으로 갓 고속정 정장이 배출됐다.

 재벌가 딸의 장교 지원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다. 재벌가 자제나 국회의원·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 및 그 자제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군 면제 비율이 사회적인 위화감을 불러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해외 유학을 나간 고위 공직자 아들 16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례도 공개됐다. 지난 6월 육군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최근 불거진 윤 일병 집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 이후론 부모가 힘이 없어 아들을 군에 보내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조가 나오는 상황이기도 하다.

고교와 대학을 중국에서 나온 민정씨는 나라의 간성이 되는 길을 먼저 택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의 도전이 군 복무를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되돌리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