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재계 뒤흔든 「세이비」파문|증권투기를 목적으로 한 비밀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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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증권파동으로 일본 재계 일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오오사까」(대판)의 대판증권신용(사장 산내륙차)이 1백개억엔의 부채를 안고 쓰러진데 이어 24일에는「훗까이도」 (북해도) 재계의 간판 「이와자와」 (암택) 그룹의 주력업체인「삿뽀로」(찰황) 「도요폐트」가 3백20억엔의 빚을 안고 도산했다.
어느 경우나「세이비」(계비)쇼크라고 불리는 동경증권시장의 투기전에 휘말린 것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대판증권신용은 투기자금으로 빌려준 돈이 부실 대출이 되어 문을 닫게 됐고 「도요페트」는 사주인 「이와자와」(암택정)사장이 직접 투기에 손을 뎄다가 거액을 날렸다는것.
「도요페트」의 부채 3백20억엔중 1백67억엔이 사장의 투기자금으로 흘러나가 녹아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와자와」 사장은 「홋까이도」 방송 (HTB) 을비롯, 51개 업체를 직·간접으로 거느리고 있는 실력자로 중앙 재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그가「도요페트」의 도산에 손을 쓰지 못한것을 보면「이와자와」그룹전체가 흔들리는게 아니냐고 일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이와자와」 파문을 두렵게 지켜보고 있다.
더우기 그가 투기를 위해 빼돌린 자금이 7개금융기관외에 「뱅크·오브·아메리카」 「체이스· 맨해턴」 「벨기에」은행등 12개 구미계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밝혀져「이와자와」의 도산은 국제금융업계에도 적지 않은 파문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연쇄도산을 믈고온「세이비」 파동은 「구로까와·기도꾸」 (흑천목덕) 증권회사의 외무사원인「가무아끼라」 (가등고서) 라는 투기사가 79년 「세이비」 투자상담실을 열고 동경증권거래소를 무대로 투기전을 벌인데서 시작됐다.
「가또」 는 처음 『약한 투자가들의 단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고객들의 자금관리를 위임받아 그 돈을 이용했다.
자본금이 적은 회사의 주식을 투기대상으로 골라 이를 집중적으로 매입, 값이 오르면 눈치 안채게 팔아 넘기는 것이 「가또」의 수법이었다.
「세이비」 그룹에 가입하면 돈을 번다는 소문이 나자 그의 투자상담실에는 2년동안 4천여명의 고객이 몰렸고 「가또」의 지령으로 움직이는 자금은 무려 2천억엔에 달했다는 얘기다.
「세이비」군단으로 불리는 그의 투기조직에는 40여명의 정치인을 비롯, 재계·연예계의 이름있는 인사들이 비밀회원으로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들에 대한「가또」의 권위는 거의 종교적인 것이 되어 한 「가또」신봉자는 『그가 보살로 보이더라』 고 헛소리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이와자와」 도 「세이비」군만의 유력한 비밀회원의 하나였다.
그는「가또」의 종용에 따라 삼능계의 서화산업(자본금 30억엔)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79년 여름 주당 시세가 2백∼3백엔이던 이 주식은「이와자와」의 매수작전이 시작된 후 계속 올라 80년 여름에는 1천5백엔까지 뛰었다. 평균 매입 가격은 7백엔대 였다. 장부상으로는 2배 이상의 이익이 남은 셈이다.
그러나 작년 가을부터 투기조직의 존재를 눈치챈 당국의 증시규제로 「세이비」그룹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반 고객들이 「세이비」의 투기주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시세가 점점 떨어졌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내놓으면 팔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시세폭락을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가또」는 산하 군단에 보유주식을 팔지 말도록 지시를 내렸다.
『나에게는 1백억「엔」이상을 동원할 수 있는고객이 3∼4명이나 있다. 이들이 시세를 받쳐줄것이니 여러분은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작년말 비밀회원그룹인 감일회의 망년회에서「가또」는 8백명의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난 2월17일「가또」가 탈세혐의로 구속되자 「세이비」 군단은 한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남보다 앞서 한푼이라도 건지겠다고 보유주식을 내놓는 바람에「세이비」가 손댄 주식은 휴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시세가 폭락했고 그나마 팔리지도 않았다.
4천여명의 「가또」 신봉자들이 한꺼번에 망한 것이다.
「이와자와」의 서화산업주식도 2백 엔대로 떨어졌다. 은행빚으로 사모은 주식이 이꼴이 되자「홋까이도」 재계의 왕자도 두손을 들 수 밖에 없게 됐다는 얘기다.
「세이비」쇼크는 아직도 완전히 가라 앉은것이 아니다.
2천억엔의 자금이 물버품이 된만큼 몇 군데서 더 기둥이 쓰러지는 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이곳 증권가의 관측이다. 「세이비」파동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증권투자가들 에게도 좋은 교훈을 남겨준것 같다.【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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