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피격가 미국의 저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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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레이건 피격사건』은 미국의 뿌리깊은 병리를 노출하긴 했어도 동시에 그 나라의 저력을 과시했다.
총상을 입은 대통령의 여유 있는 자세, 냉정을 잃지 않는 국민, 알권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매스컴은 미국의 힘을 돋보인 요소들이다.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간,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지의 편집국에서 돈·오버도퍼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레이건이 총에 맞았다』는 한 기자의 고함 소리가 조용하던 편집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이먼즈 편집국장은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하고 기자들은 각기 전화통에 매달려 취재전쟁에 나셨다. 기자도 옆에 있는 전화통을 염치 불구하고 가로채어 서울 본사에 제1신을 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레이건이 입원한 병원에서는, 30분이 멀다하고 레이건의 용태에 관한 의사들의 진단결과가 발표되고 백악관 상황실과 국무성의 움직임이 빈틈없이 추격됐다.
미국군대의 작전계통이 1분간 혼란을 겪고 백악관의 통솔 문제로 약간의 시비가 일기도 했으나 일반국민들에게는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알 권리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충족됐다. 부인과 보좌관, 그리고 그의 가슴에 박힌 총알을 꺼내려고 메스를 들고 있는 의사들에게까지도 계속 농담하는 대통령의 여유를 보고서 미 국민들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에 더 한층 확신을 가졌다.
미국은 완전개방사회이면서도 시민들은 또 공과 사를 엄밀히 구별하는 객관성을 잃지 않고 있다.
사건 직후 워싱턴·포스트지와 ABC방송이 공동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레이건에 대한 개인적인 동정심 때문에 『미 의회가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을 당분간 비만해서는 안된다』는 사람이 32%에 불과한 반면 『의회는 소신껏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61%가 넘었다. 레이건의 유고 때 부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훌륭히 처리할 것으로 믿는 사람도 68%나 됐으며 이번 저격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과 계속 직접 접촉을 해야한다』사람은 72%를 상회했다.
지금도 미국 안에서는 24분마다 1건씩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1시간에 2.5명이, 하루평균 60명이 피살되는 셈이다.
힝클리는 47달러(3만여원)를 주고산 총으로 레이건을 쏘았고, 케네디 대통령을 희생시킨 오즈월드의 카빈은 불과 24달러(1만 6천원)를 주고 우편으로 구입한 총이었다. 기분 같아선 전국의 모든 총포상을 폐쇄하고 개인소지 무기를 압수할 법도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병든 사회 폭력문화로 불리면서도 어떤 특정사건 때문에 모든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조치가 발을 못 붙이는게 미국 사회다.
공평과 개방사회로 특징지어지는 미국은 가끔 엉뚱한 사고로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지구상에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은 바로 미국사회의 이같은 저력 때문인 것 같다. <김건진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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