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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잡아가는 기성복시대|국민표준치수 고시를 계기로 본 실태와 올봄의 유행-남성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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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봄을 맞아 기성복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 몇년전부터 국민생활의 주요부분을 차지해온 기성복은 머지않아 맞춤복을 밀어내고 본격적인 선진국형의 의생활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성복업계의 실태와 전망, 올봄의 유행경향 등을 남성·여성·아동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지난해 국내 신사기성복 업계는 짭짤한 재미를 봤다. 혹심한 불황 속에서도 매출액이 30%나 늘어났다.
몇년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싸구려 제품」으로 괄시받던 신사기성복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전망이 밝아지자 최근 2, 3년 동안 10여개의 크고 작은 국내기업이 기성복업계에 진출했다.
이와 함께 회사들은 다투어 판매망 확장에 열을 올려 지난 한해동안만도 전국에 40여개의 대리점이 신설됐고 서울에서만 10여곳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신사기성복이 선보인 것은 50년대 말의 「시대복장」. 그후 60년대 들어 한국양복총판과 경남양복총판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으나 「싸구려 옷」이란 불명예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
품질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70년대 들어 삼성물산·반도상사 등이 질 좋은 고급남자 기성복을 내놓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 땅에도 본격적인 기성복시대의 막이 올랐다.
현재 신사복은 삼성물산·우도·삼풍·한국양복총판 등 4개회사가 주로 생산.
이밖에 수출에서 다진 기술을 바탕으로 복흥사와 화일상사가 79년말부터 내수시장에도 제품을 내놓고있다.
「밤빔」이란「브랜드」로 신사복을 생산해온 율산계열의 경흥물산은 모 그룹의 와해와 함께 문을 닫았다.
금년 봄 국내시장 진출설로 국내기성복 업계를 잔뜩 긴장(?)시켰던 대우실업은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방맞춤복(춘추복)이 한벌에 14만∼17만원(을지로·명동양복점)인데 비해 유명「브랜드」기성복은 6만9천∼7만8천원 선으로 거의 절반 값.
신사복 「메이커」들은 상 하의가 같은 원단인 싱글보다는 간편복인 콤비에 더 주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6대 4로, 반도는 9대 1정도로 콤비가 단연 많다.
남자들은 정장차림인 싱글은 아직도 큰맘먹고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공업진흥청은 23일 본격적인 기성복시대를 앞두고 국민체격 표준치수에 따른 신사복 등의 호수를 고시했다. 회사마다 다른 규격표시로 혼란을 겪었던 소비자들에겐 통일된 호수의 부착으로 상품구임에 불편을 덜게됐다.
신사복의 경우 상의는 키·가슴둘레·허리둘레에 따라 「321호」부터 「899호」까지 81개 호수, 하의는 허리둘레에 따라 10개 호수로 나누었다. 하의는 메이커들의 기존 가지 수와 비슷하나 상의는 현재(삼성물산은 28종, 반도 34종, 삼풍 24종)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소비자들에겐 다양한 사이즈로 더욱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사 입을 수 있게 된 셈.
그러나 거의 30%에 가까운 재고품처리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기성복 메이커들이 재고위험 부담을 안으면서 모든 사이즈를 다 생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기존 사이즈와 비슷한 호수만을 선정, 생산할 것 같다.
기성복은 경제성·간편성·효용성이 생명. 주문 복에 비해 값도 싸고 옷을 맞추고 찾는 번거로움이 없어 좋다. 옷 한벌 해 입으려고 10여 일이나 기다린다는 것은 도시인에겐 아쉬운 시간. 또 소득수준 향상으로 소비자의 옷가지수도 늘어나는데 일일이 맞추어 입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성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신사 기성복시장은 4백억원 규모.
이를 유명브랜드와 군소 업체가 반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0%정도 늘어난 6백억 원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시장을 놓고 삼성·반도·삼풍 등의 유명브랜드 회사는 판매망확장(서울10곳, 지방15곳 정도)과 제품선전 강화로 시장을 넓혀갈 계획이다.
기성복업계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연30%에 가까운 재고의 누증. 부적당한 디자인과 소비자 기호판단의 잘못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서울(2곳)과 부산 등 3곳에 상설매장을 신설, 때 지난 제품의 할인판매로 재고를 처리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신사기성복의 보급용을 15%로 보고있다. 일본의 80%나 유럽의 90%, 미국의 95%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이는 ▲선발메이커들이 기성복의 품질에 대한 인상을 흐려놨고 ▲주문 복에 대한 소비자의 급격한 인식변화가 어려우며 ▲국내시장규모가 작아 대량생산의 이점을 살리기가 어려운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 대형원단 제조회사들이 소량주문을 기피, 신제품개발이 어려운 점, 부자재생산업체가 영세하여 신사복메이커들이 바라는 수준을 따라와 주지 못하는 점등이 제품의 다양화나 고급화의 한 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성복업계에선 앞으로 3∼4년이면 신사복의 기성복 착용비율이 50∼60%가 될 것으로 보고있다.
기성복보급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시장의 잠재력이 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는 대로 당장 입을 수 있으면서도 맞춤복에 손색없는 고급제품을 싼값에 공급하는 것만이 기성복시대를 앞당기는 길이다. <한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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