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단발로 승부 짓는 명 포수의 통렬함을|정완영<시조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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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짐승이나 어 별을 잡는데도 그 포획 법이 따로 있다. 가사 호랑이나 곰이나 멧돼지를 잡는데는 이놈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무심코 어슬 렁이 나타난 놈에게 일발필중의 포화를 쏘아 적중시켜야 된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맞히게 되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쩡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관
읽던 책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 선가 낮닭소 리.
『오』
이호우 선생의 작품이다. <석류꽃 똑 떨어지며 어데 선가 낮닭소리>이 종장이야말로 일발필중으로 적중한 종장이다. 이 시에는 이 종장 말고는 다시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종장뿐 아니라 시제 자체도『오』라는 단자를 놓아 이미 적중하고 있다. 단발로 큰 짐승(시재)을 쓰러뜨린 통렬 감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포수로 친다면 과연 명 포수의 솜씨이다.
바늘 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 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겐 은 바늘(적중 어)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종장에는 주마 축지, 달리는 말이 뒤 굽으로 땅을 차듯 하는 경개도 있는 것이다.
궂은 일들은 다 물 알로 흘러 지이다.
강가에서 빌어 본 사람이면 이 좋은 봄날 휘 드린 수양버들을 그냥 보아 버릴까.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떨리는 가장자리를 볕 살 속에 내 놓아.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오로지 졸음에는 어쩔 수가 없다.
종일을 수양이 되어 강은 좋이 빚 나네.
『수양산조』
박재삼 선생의 명품이다. 고려청자·이조백자만 국보가 아니라, 이런 시풍이야말로 국보급이다.
박재삼 시인은 총포로 사나운 짐승을 잡는 포수가 아니라 여울목에 그물이나 통 살을 쳐 놓고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고기를 건져 올리는 어부 같은 시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두어야 할 일은 그물이나 통살을 아무 물에나 친다고 고기가 들어와 주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의 통로를 알아서 그물이나 통 살을 쳐야 고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이 시인은 물고기가 흐르는 목, 다시 말해서 인정의 흐름, 천지의 기미, 무엇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말하자면 모든 사물과 통화를 가장 잘하는 달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힘을 안들이고도(?) 고기를 잘 잡아내는 달 통한 어부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억지를 부린 흔적이라고는 없다. 자수를 맞추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가락(내재율)에 자수가 절로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대 그리움에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 냥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
이영도 선생의 살뜰한 작품이다. 그리운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는 곡 진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언단 의장이 짧디 짧은 단수 하나로 하여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온통 촉촉하게 젖어 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간곡히 타이르는 듯한 이 정의로운 저음은, 마치 봄날 어린 소녀가 신발을 벗어 들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뒤쫓아가 나비 날개를 잡아내듯 하는 보시 법을 쓰고 있다. 묘 품이다. 심안을 열고 입실하여 보라. 천지간에 시는 얼마든지 편재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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