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9시 등교’ 필요한 까닭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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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교육청에서 9월1일부터 등교시간을 오전 9시로 늦춘다고 발표했다. 모자란 잠을 충분히 자고,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 과중한 학습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반대 의견도 많다. 아이들의 공부 시간이 줄어들어 다른 지역 학생들과 격차가 생길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 등의 의견이다. 수능 시험의 시작시간과 맞지 않아 생체리듬에 혼란이 온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교 3학년 때 딱 한 번 시험을 보는데, 그날을 위해 생체리듬을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번 분석했으면 한다.

먼저 우리 아이들 얼마나 자고 있나를 보자.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중고등학생 7만56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중(週中) 평균 수면 시간이 고등학생 5.5시간, 중학생 7.1시간이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권고한 청소년 수면 시간 8.5~9.25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국내 조사에서 주중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고등학생의 비율은 27.2%였다. 8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는 학생은 2.3%에 그쳤다.

하루에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선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잠을 자다가 특히 잠에 깊게 빠진 렘(REM)수면 동안에 낮에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특히 어려운 문제의 해결, 악기 배우기와 같은 절차 기억과 관련한 영역은 충분한 수면과 상관관계가 있다. 가천의대 이유진 교수팀이 미국의학회가 출간하는 ‘소아과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고교생들 중 주중에 잠이 모자라서 주말에 몰아서 자는 시간이 많은 학생일수록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이 잠이 모자란 경우 우울증과 상관없이 자살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잠을 잘 자는 것은 정신건강을 떠나, 공부를 잘 하는 데도 중요하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상하게 고등학생이 되면 잠이 늘고, 아침엔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왜 그런 것일까.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이라서? 둘 다 아니었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마리 카스카돈 교수는 사춘기 후반인 청소년의 경우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2시간 정도 지연되면서 몸의 생체시계가 밤이라고 여기는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밤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일찍 학교에 가서 앉아 있다고 해도 여전히 몸은 잠을 원하고 있으므로 멍하고 졸린 상태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잠이 항상 부족하다고 여기며 짜증이 늘어난다. 이같은 청소년의 정상적인 발달 생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해결책은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세인트 조지 고등학교에서 등교시간을 30분 늦추는 프로젝트를 9주간 실시했다. 그 결과 충분히 잘 잤다는 학생이 확연히 늘어났다. 첫 시간의 지각은 줄어들고 집중력이 높아졌으며 낮잠 욕구는 20% 줄고 주간 졸림도 50% 감소했다. 이처럼 과학적 사실은 9시 등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물론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과 불편이 예상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과 더 나은 학교환경을 위해 9시 등교는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잘 자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한다.

온라인 중앙일보 ·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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