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침공과 무력수출 병용하는 소련 국제「테러」의 "대부"노릇|미-소「데탕트」는 끝장이 났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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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레이건」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붙기 시작한 미소간 설전의 밀도가 심상치 않을 정도로 짙어가고 있다.「레이건」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소련지도자들을『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가 하면「헤이그」국무장관은 소련이「테러리즘」을 감싸고 도는 집단이라고 호통을 치고 있다. 반면에 소련은「레이건」취임 후 지금까지 관영「타스」통신과 「프라우다」지 등을 동원해 연일 미국과「레이건」행정부 지도자들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레이건」은 60년대 후반 이후 미소의「데탕트」관계가 실은 소련에 의해 일방적인 군사력증강의 기의로 이용됐다고 비난하는가 하면「데탕트」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허구의「데탕트」속에 소련만이 득을 보았다는 비관이 서방 단에서 일어나고 있다.
소련 측에 기울어진 미소 군사력(지도 참조)과 소련의「테러」수출 실상 및 앞으로의 미소관계(「이코너미스트」사실)를 살펴본다.
언제나처럼 소련은 그것을 철저히 부인했다. 우리의 대외정책을 고의적으로 왜곡한다』고 노발대발했다.
『「테러리스트」소련』-「레이건」이 취임수 인사 대신 던진 투박한 대소비난에 소련 촉은 누명쓴 처녀처럼 분노와 결백을 강조했지만, 「아프가니스탄」침공과 숱한 동구권 탄압의 역사 앞에서 이런「제스처」는 궁색한 빛을 띨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서방측의 대소관계에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한 소련의 국제「테러리즘」에는 두가 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무력침공이라는 직접적 폭력행위이며, 또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의 폭력과 혼란을 조장하는 간접「테러리즘」이다.
이중 간접「테러리즘」은「혁명의 국제화」와「대리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직접「테러리즘」보다 오히려 더 광범위한 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카터」행정부의 CIA국장이었던「스탠즈필드·터너」도 지난 7일 CBS-TV와의 회견에서『소련은 중남미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혁명운동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레이건」·「헤이그」의 대소비난을 뒷받침했다.
비공산국에서의「테러」활동지원은 국제공산주의의 기본 노선이지만 소련이「테러리스트」들의 대부노릇에 발벗고 나선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 「데탕트」가 한창 무르익던 73년 8월「프라하」에서 열린「바르샤바」조약국 회의의 비밀연실 에서「브레즈네프」는 민족해방운동의 성과를 찬양한 후『소련은 이들의 「테러」활동을 외교정책의 한 방편으로 이용할 수 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내용이 서방측에 새어나가 말썽을 빚자 소련은 다시 부인작전을 했지만 이때부터 PLO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등에 대한 소련의 군사지원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이후「쿠바」와「리비아」등 두 숙달된 조교를 이용한 소련의 간접「테러」활동은 본궤도에 올랐다·
미CIA가 지난해 2월초 의회에 제출한「소련 비밀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이 전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데 쓰는 돈은 연간 2억「달러」(1천4백억원)쯤 된다. 주요 활동은「테러」조직이나 반군에 대한 무기공급·군사훈련·자금과 정보제공 등이다.
국제「테러리스트」들이 쓰는 무기의 대부분은 소련과 동구권에서 공급한다. 78년「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이「알도·모로」수상을 납치 사살할 때 쓴 총은「체코」제「스코르피온」이었고, 중동의 과격단체 PFLP는 소제「샘」7「미사일」을 사용해 민간여객기를 공격했었다.「짐바브웨」의「조슈아·엔코모」가 이끌던 ZAPU「게릴라」도「샌」「미사일」 을 즐겨 썼고「스페인」의 「바스크·게릴라」는「체코」제 무기를 쓴다.
이들 소련 권의 무기들은 주로「리비아」를 중개인으로 해서 제공 혹은 판매된다. 76년 「리비아」는 소련 권과 각국의「테러리스트」를 맺는 사상 최대의 무기흥정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때의 수요자명단에는 북「아일랜드」IRA, 독일의「바더·마인호프」「갱」, 일본 적군파 등 총 깨나 쏘는 조직은 모조리 올라있었다.
PLO의 경우는 79년3월「아라파트」가 소련을 방문한 이후 제3국을 통하지 않고 소련으로부터 직접 무기공급을 받고 있다. IRA등 비「아랍」지역에도 소련은 때때로 무기를 직접 공급한다.
무기제공보다 더욱 공공연한 것은「테러」요원의 훈련이다. 소련 안에 있는40여개소의 훈련소에선 세계각국의 장정들이 「게릴라」전법·「사보타지」·암살·첩보활동수법 등을 교육받고 있다. KGB(국가안전위원회)와 GRU(군사정보국)가 주관하는 이들 훈련소는 주로 「모스크바」근교나「크리미아」의「심페로플」「바쿠」「타슈켄트」「오데사」부근에 자리한다. 소련 국내 뿐 아니라「체코」「불가리아」「헝가리」동독, 심지어는「쿠바」에까지 KGB와 GRU직영의 훈련「캠프」가 있다. 중동의「아랍·게릴라」훈련소에도 소 고문관이 상주한다.
그 동안 소련의「캠프」를 졸업한「테러리스트」의 숫자는 확실치 않지만 수천명 대라는 것이 서방측의 추산이다.
74년 이후 훈련받은「팔레스타인」인들만도 1천명이 넘는다. 우수한「학생」은 소련의 정규사관학교에 입교시키기도 한다.「모스크바」의「파트리스·루뭄바」인민우정대도 우수요원의 양산지다. 「콩고」독립초기의 친공 지도자「루뭄바」의 이름을 딴 이 대학은 제3세계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유학생들 중 유망한 사람을 뽑아서 일급「테러리스트」로 만드는 것이다.
75년「빈」에서 OPEC 석유 상들을 납치해 이름을 떨친「베네쉘라」의「일리치·라미레스·산체스」, 일명「카를로스」는「루뭄바」대에 유학 갔다가 전문「테러리스트」로 변신한 대표적 예다.
소련과「테러」조직들과의 실무연락은 해외주재 KGB요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구국가들이나「쿠바」「리비아」혹은 PLO가 맡는다.
특히「쿠바」는 미 주권 안에 있는 소련의 대리인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테러리스트」의 훈련을 맡을 뿐 아니라「니카라과」의「산디니스타·게릴라」를 도와 집권케 했으며 「과테말라」「온두라스」의 반정부「게릴라」를 지원하는 등 미국의 뒤 울안을 어지럽힌다는 소련 정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중동, 특히「아라비아」우도에서의 소련의 책동은 서방으로 망명한 KGB중동전문가「블라디미르·사하로프」가 폭로한 바 있다. 그는 79년11월 회교성지「메카」의「그랜드·모스크」를 점령했던「테러리스트」들도 소련이 후원했다고 주장했다. KGB 중동공작의 중심지는「베이루트」의 소련대사관으로 88명의 직원 중 37명이 KGB나 GRU요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의 이 같은 국제「테러리즘」지원정책은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제정「러시아」를「테러」에 의한 혁명으로 뒤엎고「볼셰비키」들이 집권한 사실이 소련 지도자들에겐 생생한 교훈, 배워야할 선례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 소련문제연구소의「리처드·파이프스」교수는『소련의 세계전략은 대부분 공산혁명 당시「볼셰비키」일당이 지하투쟁을 하면서 체득한 정책과 수법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춘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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