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배병우 사진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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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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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 헤어져 몇 날인가

온 산천 함께 올랐건만

언제 석문산에서 다시 만나

황금 술잔에 술을 나누리(…)

서로 다 불쑥 떠돌 듯 헤어지니

우선 수중의 잔이나 비우세

- 이백(701~762) ‘동석문에서 두보를 보내고’

특정한 어느 시기에 한꺼번에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뛰어난 인물들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와 시선(詩仙) 이백이 744년 만났을 때 이백은 두보보다 11살 연장자였다. 낭만주의자 이백, 그에 비하면 현실주의자였던 두보는 그럼에도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자마자 술친구가 되어 짧은 교우였지만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

 살면서 두보와 이백 저리 가라 할 우의를 누리기도 했지만 역시 30대, 늦어도 40대에 흔한 말로 사람 사이의 사고를 치는 것 같다. 60대에 들어서니 이렇게 기백을 품기도, 낭만의 물결을 일구기도 어렵다. 옆에서 지켜보며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니 사랑도, 우정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이 쌓을 일이다.

 나는 15년 전부터 일본 큐레이터들과 남부럽지 않은 교분을 나누고 있다. 만나자마자 내 작품세계를 이해해주고 전 세계로 소개해줬다. 국경을 뛰어넘어 ‘너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가 될 것’이라 자신감을 심어줬다. 최근 내가 사귀는 벗은 전방위 설치미술작가 최정화씨다. 11살 아래지만 보자마자 ‘이거 물건 되겠다’ 싶었다. 사람 사이 정이 각박해진 이 시대에는 마음과 인격이 만나는 일이 드물어서 오히려 기대감이 커진다. 끼리끼리 알아보고 형제처럼 흉금을 터놓고 함께 갈 수 있는 이를 오늘도 기다린다. 배병우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