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력」로보트 군 산업계에 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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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본=이근량 특파원】서독의 세계적자동차「메이커」인「폴크스바겐」사의 조립공장.「어셉블리·라인」을 따라 아직 미완성의 딱정벌레차들이「컨베이어·벨트」위를 줄지어 미끄러져 가고 있다. 이중의 한 과정인 용접공정(공정). 금속을 녹이는 불꽃이 튀면서 밀려드는 부품들이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지고 이어 붙여져 다음공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용접불꽃이 튀는 주변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크레인」같기도 하고 커다란 의수 같기도 한 기계들만「컨베이어·벨트」양쪽에 줄지어 섰을 따름이다. 이 「기계」들은 그러나 마치 사람처럼 미끄러져 오는 부품들을 들어올려 용접하고 다시 놓아 보내 그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2백 명일 50대가>
SF영화의 한 토막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으스스하기도 한 이 광경이 바로 요즘 세계의 산업계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산업「로보트」』의 작업모습이다.
『「로보트」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80년대에 들어 미·일·「유럽」제국 등 선진공업국들이「제2의 인력」혹은「초 인력」으로 불리는「로보트」들을 앞다투어 생산하고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제2의 산업혁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블루·칼러」(노동자)아닌「스틸(철)칼라」인 이「로보트」들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각종공장에서 자동차를 용접하고 칠하며 냉장고를 조립하고 탄광에서 채탄을 하는가 하면 유리창을 닦고 닭털을 뽑는 일까지 하고 있다.
미국「크라이슬리」자동차공장에선 50대의「로보트」가 종전에 2백 명의 용접공이 하던 일을 거뜬히 해내고 생산량도 20%나 늘려 주었다.
소규모 공장들은「로보트」를 씀으로써 최고 80∼90%의 경비를 절약하고 있다. 「폴크스바겐」공장엔「로보트」가 2백97대, 83년까지는 6백여 대를 추가 배치할 예정이다. 「벤츠」나 BMW사 등도 이 대열에 뛰어들어 서독의 자동차업계는 모두「로보트」화에 열띤 경쟁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튜린」에 있는「디지털」전자기계회사에선 1대가 10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프라그마」3000이란 11만「달러」짜리 고급산업「로보트」를 시험중이다.
「로보트」라지만 영화나 만화에서 보아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모습을 닮은 것은 아니다. 형태는 여러 가지지만 대체로 언뜻 보기엔 목이 3m쯤 되는 큰 새, 또는 큼직한「부리」나「팔」을 연상시킨다. 결코 멋있다고는 볼수 없는 이 산업「로보트」는 그러나 생산성저하에 허덕이는 산업계를 회 생시키고 중소기업에도 대량생산방식을 도입해 주며 궁극적으론 국가의 결정, 사회조직과 가치체계까지도 바꿔 놓을 것으로 예상되는「무서운 기계」다.
「로보트」사용의 경제적 배경은 생산성의 저하에 있다. 대표적인 미국의 경우 60년대까지 만도 연 3%이상이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엔「마이너스」0·9%로 폭락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재 산업화」의 주역으로「로보트」가 착안된 것이다. 평균 4만「달러」의 값만 들이면「로보트」는 24시간을 가동할 수 있으며 빈들거리지도 아프지도 않으며 싫증을 느낄 줄도 모른다.

<휴가·퇴직금 불 요>
휴가도 퇴직금도 필요 없으며 직업병에도 시달리지 않는다. 생산성은 40∼10배다. 한마디로 경영주들의「꿈」이다.
게다가 60년대에 개발된 초소형「마이크로 컴퓨터」덕분에「로보트」의 핵심인 인공두뇌의 생산·사용이 경제적이 됐다. 여기에「사람」들의 임금「인플레」까지 겹치자 인간보다 3∼4분의1밖에 경비가 안 드는「로보트」의 사용은 거의 필연적이 될 것이다.
「로보트」혁명의 선두주자는 미국의「제너럴·모터즈」. 10여 년 전 50대의「로보트」를 「어셈블리·라인」에 처음 세워 놓았다.
그후 10년 후, 세계의 큰 공장들에서는 무려 1만6천 여대의 산업「로보트」들이 일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은 자동차업계의「공원」들이다. 나라별로는 미국에 3천대, 서독이 8백50대,「스웨덴」6백대,「이탈리아」5백대,「폴란드」3백60대,「프랑스」「노르웨이」각 2백대,영국은 1백85대, 「핀란드」1백30대, 소련이 25대. 그러나 최대의「로보트」보유국은 놀랍게도 일본이다. 무려 1만대, 전세계 산업「로보트」의 60%이상이 일본에 몰려 있다.
일본의 산업계는 67년에 미국에서「로보트」를 처음 수입해 온 이후 자체생산에 박차를 가해 이젠 보유대수가 미국의 3배 이상, 연간 생산량은 미국(1천5백대)의 5배 이상이다.

<두뇌는 5살 정도>
「로보트」가 사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컴퓨터」로 만들어진 인공두뇌덕분. 이 「컴퓨터」를「프로그래밍」하기에 따라서 최소한 이론상으로는「무슨 일이든」할 수 있다.
「로보트」가 종래의 자동기계와 다른 점도 이「프로그래밍」에 있다. 즉 필요에 따라 새로운 지시를 기억시킴으로써 기능을 바꿀 수도,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주입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컴퓨터」는 「로보트」에 인간과 유사한 「감각」기능을 주기도 한다. 눈(안)역할을 하는 것은 TV「카메라」. 촉각·청각도 가질 수 있으며 맛을 보는 미각, 냄새 맡는 후각까지도 필요에 따라선 갖출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산업「로보트」들은 아직 사람과 맞먹을 정도로 「똑똑한」것은 아니다. 가장 정교한 「로보트」도 기능으로 볼 때는 1살 반∼5살정도 어린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로보트」공학 자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기술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용접·운반 등 단순노동을 주로 하는 현 단계에선 필요한 「두뇌」는 5살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말 「사람 같은」「로보트」가 등장할 것은 확실하다. 서독의 전문가들은 20∼25년쯤 후엔 농업등 기타산업과 일상생활에「로보트」가 널리 쓰이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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