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락의 갈림길 카터·리건 TV대결-역대토론의 실례와 양 진영의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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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클리블랜드=김재혁 특파원】아직 25%의 유권자들이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29일 열린 「카터」·「리건」의 TV토론 분위기는 단상의 긴장감과는 달리 방청석은 차분했다. 두 진영은 오래 전부터 토론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짰고 주말에는 모의토론으로 「리허설」을 갖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TV카메라를 통해 전국의 수천만 유권자들을 상대로 후보끼리 직접 대결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정치적 모험」으로 꼽혀왔다. 특히 이번처럼 유권자의 지지도가 막상막하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말의 실수」나 TV화면에 비쳐진 「스타일」과 「이미지」가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 「닉슨」후보는 「스타일」때문에, 그리고 1976년 「포드」후보는 실언 때문에 패배했다.
대통령후보가 TV공개 토론을 갖기는 1960년9월26일 「시카코」에서 CBS-TV가 주선한 「닉슨」과 「케네디」간의 대결이 효시다. 이미 8년간이나 부통령을 지내고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닉슨」과 40대의 상원의원 「케네디」간에 벌어진 토론은 내용에선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으나 「스타일」에서 「케네디」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토론직전의 「갤런」여론조사는 47대 46으로 「닉슨」이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토론 직후에는 49대 46으로 「케네디」가 앞섰다.
「닉슨」이 패배한 이유는 TV의 영상효과를 거의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분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나타났고 정책을 설명하는 자세와 말재주가 즉흥적이고 나약하게 보였다. 이에 비해 「케네디」는 보좌관들의 도움으로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 자신에 가득찬 도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76년의 「포드」·「카터」의 1차 대결에서 「카터」가 신경질적인 인상을 준데 비해 「포드」는 현직 대통령답게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토론직후 「카터」의 인기는 10%나 떨어졌다. 그러나 「포드」는 2차 토론에서 소련이 동구권을 지배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실언함으로써 치명상을 입었다.
「카터」와 「리건」진영에선 이 같은 실패사례를 면밀히 검토하여 답변에서 실수하거나 「이미지」손상을 끼칠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포드」·「카터」토론 때의 「필름」으로 「카터」의 「스타일」을 연구한 「리건」참모들은 예상 질문집을 만들어 사흘동안 「리건」에게 「브리핑」했고 TV「카메라」를 동원, 「카터」대역과 모의 토론까지 가졌다. 「카터」측도 예상문제집을 만들어 공부를 하고 현직 대통령이란 강점을 최대로 살려 시청자들에게 확신을 줌으로써 15%안팎의 유동표를 흡수할 작전으로 나왔다.
「카터」의 참모들은 「카터」에게 쇳소리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를 보다 부드럽게 하라고 충고했다.
토론을 준비한 여성유권자 연맹 측은 사소한 실수가 두 후보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에 대비해 토론장 입장객을 제한하고 「플래시」를 사용해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했다.

<미 대통령 후보|신문의지지 폭>

<카터>
「뉴옥·타임즈」「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미니애폴리스·트리뷴」「밀워키·저녈」「캔자스시티·스타」「볼티모·선」「볼티모·뉴스·아메리컨」「세인트피츠버그·타임즈」「영즈타운·빈디케이터」

<리건>
「시카고·트리뷴」「보스턴·헤렬드·아메리컨」「탬퍼·트리뷴」「디트로이트·뉴스」
「인디아내폴리스·스타」「샌프란시스코·이그재미너」「시애틀·타임즈」

<앤더슨>
「벌링턴·프리·프레스」「비버·카운티·타임즈」「록퍼드·리지스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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