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살기로 무대를 지켰다, 어느덧 6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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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임영웅은 소극장운동의 아버지다. 1969년 세운 신촌 산울림소극장은 자녀들이 꾸려가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발의 노인은 여전히 꿈을 키우고 있었다. 언제 올지도 모를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아내(오증자 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가 번역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들고 있었다. 인생이란 기다림 자체라는 것을 일깨운 부조리극의 대표작이자, 연극연출가 임영웅(78)의 오늘을 있게 한 작품이다. 임씨는 1969년 이후 ‘고도를 기다리며’를 부단히 매만지며 ‘임영웅=고도’라는 등식을 만들어왔다.

 임씨가 무대인생 60년을 맞았다. 55년 서라벌예대 시절 유치진의 ‘사육신’으로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100여 편의 연극·뮤지컬을 빚어내며 공연계의 ‘맏형’으로 활동해왔다. 60주년 기념작은 스웨덴 작가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의 ‘가을 소나타’(22일~9월 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성취욕 강한 피아니스트 어머니(손숙)와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는 큰딸(서은경)의 갈등을 축으로 현대인의 단절과 소외, 반목과 화해를 다룬다.

 “베리만은 영화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연극연출도 많이 했습니다. 영화로도 알려진 작품이지만 연극으로 제대로 소개된 적이 드물었어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모녀 관계를 파고들었던 제 작품세계와 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공자는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어떤 말이든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대 나이 이순에 들어선 그의 감회는 어떨까.

 “6년이나 60년이나 마찬가지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평생 할 수 있었으니 이만한 행운도 없을 겁니다.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관객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임씨의 모토는 ‘연극=인생’이다. 연극은 삶의 굴곡을 담는 그릇이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디딤돌이라고 믿어왔다. 그가 지금 기다리는 고도, 즉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힘들 때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죠. 바보처럼, 죽기살기로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처럼 말이죠. 어제나 내일이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할 겁니다. 그래도 ‘나만의 고도’를 꼽는다면 갈등과 투쟁이 없는, 고루 여유 있게 사는 세상입니다. 이상주의라는 것을 알지만 숱한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도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사회를 향한 예술의 소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죠.”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 눈 감는 순간까지 연극을 하시겠죠.” 대답이 익살스럽다. “앞으로 60년 더하겠다면 너무한가요. 100살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하하.”

글=박정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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