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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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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논설위원

한·일 간 불신과 대립, 마찰의 악순환을 보면서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는 과거가 아니고, 그 단층(斷層)도 겹겹이지만 역사는 늘 지혜와 성찰의 샘이다. 바꿀 수도, 옮겨갈 수도 없는 이웃나라 간 씨줄 날줄의 관계사는 더욱 그렇다. 선대의 현실주의(Realism) 외교는 불편하기도, 무릎을 치게 하기도 한다. 교섭에 대한 이중적 반응은 대륙과 해양 강국에 낀 한반도 지정학의 숙명일지 모른다.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 직후로 돌아가 보자. 문화 우월주의의 조선에 치욕이던 7년 전란을 뒤로 하고 선조 조정은 2년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와 강화(講和)교섭에 나선다. 조선과의 교역에 사활이 걸려 있던 쓰시마번(對馬藩)의 요청을 받고서다. 쓰시마는 "도쿠가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무관하며, 화해를 원한다”고 전해왔다. 이 메시지는 1604년 사명대사의 도쿠가와 면담에서 확인됐다. 조선은 복교(復交)의 전제로 두 가지를 막부에 요구했다. 하나는 도쿠가와가 먼저 ‘일본 국왕’ 도장이 찍힌 국서(國書)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란 당시 한양의 선정릉(宣靖陵) 도굴범 송환이었다. 종묘사직의 위신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쓰시마는 서둘러 도쿠가와의 국서와 도굴범 두 명을 보내왔다. 국서는 쓰시마에 의해 위조된 것이었다. 조선은 이를 알고 있었다. 도굴범 두 명이 잡범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선조가 직접 너무 젊어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선은 명분이 관철된 것으로 보았다. 도굴범 두 명을 처형하고 사절단(회답겸 쇄환사)을 1607년 일본으로 보냈다(나카오 히로시의 『조선통신사』, 손승철 강원대 교수 논문 참조).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외교였다. 조선엔 전란 복구와 민생 회복, 일본 납치인 송환, 북방의 여진족 견제가 급선무였다. 사절단 파견으로 조선조 이래의 화평-대등의 대일 교린(交隣)관계가 회복됐고, 조선과 도쿠가와 막부의 200년 평화가 시작됐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조선·막부 간 성신(誠信)외교는 동아시아를 평화와 문화 교류의 회랑으로 만드는 초석이 됐다.

 49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 14년간의 양국 교섭은 초기의 우리 측 ‘해방의 논리’를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타결됐다. 많은 파장을 남겼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가 없는 기본조약은 굴욕 외교의 상징이 됐다.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한 청구권 협정은 지금 한국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그러나 한·일 우호·협력은 양국 모두에 이익이었다. 아시아에서의 냉전 승리와 한국의 재건·발전에 기여했다. 양국은 냉전 붕괴 후 자유와 민주주의 연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풀뿌리 교류의 지평도 넓어졌다.

 그 한·일 국교정상화 65년 체제는 지금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상대적 퇴조, 중국의 급부상 속에서 좌표축을 잃고 있다. 한·일 간 불협화음은 구조적 성격이 강하다. 세력 전이(轉移)가 빚고 있다. 상호 관계가 왜소화됐고, 상대화됐다. 서로를 보는 눈높이도, 관점도 다르다. 일본은 아시아, 세계 차원에서 양자 관계를 조망한다. 한국은 그 접근 틀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안을 푸는 방식도 다르다. 우리는 밑에서 위로다. 차근차근 쌓아가는 신뢰 외교다. 일본은 반대다. 정상회담에 무게를 둔다. 그러면서 양국은 현해탄을 넘어 전 세계에서 과거사, 영토 문제로 맞서고 있다. 한국은 한·일에 앞선 중·일 화해와 북·일 접근을, 일본은 한국의 중국 편승을 경계한다. 동맹인 미국엔 서로 상대 탓만 한다. 상호 패자(敗者) 관계다.

 시간은 한국 편도, 일본 편도 아니다. 올해 안에 국교정상화 반세기를 총결산하고, 새 파트너십 비전을 마련해 나가는 계기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는 과거사 쓰나미가 올 수 있다. 광복 70주년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도 예정돼 있다. 선수(先手)에 묘미가 있다. 의제를 주도하기 쉽다. 우리에게 한·일 신 우호·협력의 창조 외교는 창조 경제다. 한국을, 중국을 떠난 엔화와 사람이 들어온다. 그물망 외교는 통일 기반 구축의 조건이다. 선대의 현실주의는 역사가 평가하고 있다.

오영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