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시험문제 낸다 … 공부시간 늘고 성적 '껑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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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부성중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나도출제박사`들이 낸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채원상 기자

천안 부성중의 색다른 학습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성중이 지난해 6월부터 운영 중인 ‘나도출제박사’다.

학생이 직접 시험문제를 만드는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만든 문제는 실제 시험에 나온다. 나도출제박사에 참여한 학생들을 만나 학습 효과를 물었다.

“특별한 공부법을 익히거나 학원을 다녀도 오르지 않던 수학 점수가 10점 넘게 뛰었어요.” 천안 부성중 2학년 오유민(15)양은 얼마 전 치른 1학기 2차 고사에서 수학을 75점 받았다. 1차 고사에 비해 14점이나 올랐다. 같은 반 친구들과 나도출제박사에 참여한 덕분이다. 학생이 시험 과목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나도출제박사다. 오양은 수학·과학 과목 출제위원이 됐다. 오양은 교과서와 문제집을 여러 번 읽은 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문제로 만들었다.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몇 번씩 질문하기도 했다. 오양은 “직접 문제를 내고 다시 보면 어려운 내용이 쉽게 이해됐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서 출제

같은 학년 김예림(15)양도 1차 고사 때 88점이었던 수학 성적이 2차 고사에서는 100점으로 올랐다. 자신이 만든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문제와 비슷한 것이 출제됐기 때문이다. 수학 과목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양은 교과서에 있는 문제에서 숫자를 바꾸거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중심으로 문제를 만들었다. 문제를 내기 위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양은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문제를 만들며 공부하니 중요한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며 “내가 낸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기분이 좋고 성적도 오른다”고 말했다.

나도출제박사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른 학생도 있다. 2학년 배현호(15)·김동민(15)군은 맞히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기 위해 교과서는 물론 다양한 문제집으로 공부한다. 실제로 두 학생은 지난해 과학시험에서 자신들이 낸 문제를 풀어 성적이 오르자 자신감도 붙었다. 배군의 경우 과학 성적이 70점대에서 80점대로 올랐다. 김군은 “문제를 낼 때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며 “교과서를 보는 횟수가 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부성중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이나 잘못된 학습 습관으로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시행 중인 나도출제박사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 2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학원에서 하는 암기·주입식 위주 공부보다 스스로 하는 공부에 초점을 맞췄다.

 부성중 학생들은 시험 2주 전 수업시간에 교사가 강조했던 부분과 어려웠던 내용을 토대로 직접 시험문제를 만든다. 학생들은 1학기 1차 고사 8개 과목에서 324문항, 1학기 2차 고사 9개 과목에서 159문항의 문제를 만들었다. 이 중 1차 고사엔 64문항, 2차 고사엔 30여 문항이 반영됐다. 모든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건 아니지만 교사는 학생이 만든 문제 중 20% 정도를 시험문제로 낸다. 학생의 학습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출제는 선택사항이다. 출제를 원하는 학생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참여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모범학생 점수에 반영한다. 학생의 학습 동기와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 많은 학생이 출제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이 낸 문제 20% 실제 시험에

정소영 부성중 연구지원부장은 “가끔 학생이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제를 내기도 한다”며 “실제로 학생들이 낸 문제를 보면 교사도 출제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성중의 나도출제박사는 평가를 교사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존 교육방식과 달리 학습자에게 학습의 주도권을 준 혁신적인 학습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이 학습의 시작과 과정에 많이 치우쳐 있는 반면 나도출제박사는 학습의 인지적 영역에서 고차원인 평가에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장선영 남서울대 교양과정부 교수는 “문제를 만든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알고 있다는 뜻”이라며 “나도출제박사는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학습을 설계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학습자의 성취감과 자신감을 유발시킨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학습에서의 주인의식은 학습자가 최우선으로 가져야 할 자세고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학습자 개인의 학습 능력과 주체적인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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