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안은미 무용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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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조지훈(1920~68) ‘승무’ 중에서

의외로 춤에 대한 시는 많지 않다. 이 시는 1939년이란 발표 연대도 놀랍지만 승무(僧舞)라는 불교 색채가 짙은 춤을 이렇게 묘사했다는 게 더 경이롭다. ‘나빌레라’ 같은 형상화는 미디어 없던 시절에 마치 3D로 승무를 보는 듯 시각화가 뛰어나서 자꾸 다시 읽게 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하지만 제대로 무용을 배우기까지는 부모님과 투쟁에 가까운 밀고 당김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자 드디어 엄마가 내 열성에 졌다. 당시 교습비로 1만원을 받아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승무’의 시어(詩語)를 내 몸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을 때 그 기쁨은 지금도 온몸이 떨릴 만큼 생생하다.

 춤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제사 의식 할 때 보면 항상 춤이 앞장선다. 신과 만나려면 신이 나야 하지 않겠는가. ‘신난다’는 신이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춤은 신을 만날 수 있는 카톡, 즉 메신저 같은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저버린 게 근대인데, 인류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 그 순리를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는 길 중 하나가 춤이라 믿고 있다. 자, 다 같이 춤을 춥시다. 지구를 떠나서 우주여행을 떠나요. 둥둥 날아오릅시다.

안은미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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