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도동과 동교동의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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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방 나들이와 시기 관망>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는 지방 나들이에서「티킷」환영에「사인」공세를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후보도 26일 저녁 서울YWCA수요강좌에 나가 처음 대중 상대 강연을 하면서 열띤 박수를 받았다.
김영삼 총재는 지난2월3일 대전에서 대통령 출마의사를 처음 표했고 김대중씨는 YWCA에서 후보로 나설 의향을 강력히 시사했다.
두 김씨가 대권을 노리고 있음이 공인됐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하든 두 사람사이의 후보쟁탈전은 열기를 더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 후보는 얼마 전 유석 조병옥 박사 추도식에 나란히 참석해 추도사를 같이했다.
경건한 추도모임이라 선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참석자들의 시선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퇴장할 때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김 총재는 청년당원들에 둘러싸여, 김씨는 재야지지자들 속에 파묻혀 각기 자기 부대만의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떠나는 광경에서 사람들은 두 김씨의「거리」를 확인했다.
김영삼 총재는 연설 때마다『신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라고 강조한다. 그 외 지방 나들이에는 으례『민심도 김영삼·천심도 김영삼』이라는「피킷」이 동원된다.
김대중씨는 자택에서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지난 73년 일본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을 건널 때 수중고혼이 될뻔했던 때 기도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하느님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당신의 도구로 나를 쓰시려는 섭리』라고 역설한다. 26일의 YWCA강연에서도『대통령도 하느님이 시키면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제각기 하늘의 뜻을 내세우는 두 김씨는 모두 신민당 대통령후보란 고지를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 총재 측이 막강한 당 총재직을 십분 활용하는데 비해 김씨측은「재야」를 배경으로 신민당을 공략한다는 전략이 아닌가 보여진다. 김씨가 신민당 입당문제에 관해 재야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여건조정을 내세운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양씨, 하늘의 뜻 내세워>
두 김씨간에 놓여있는 심연은 바로 김대중씨와 재야를 신민당이 어떻게 영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중도를 자처하는 한영수 의원 같은 이는 후보단일화에 앞서 재야와의 봉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제의하고있다.「선 통합·후 후보조정」을 내세우는 의원은 한의원뿐 아니고 오세웅 의원을 중심으로 한 후보 사전 조정 서명 주동「멤버 들 사이에서도 나오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예우를 해서 영입할 것이냐는 데 있으나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에 거리가 너무 멀다.
김씨계의 이용희 의원은 재야에서 투쟁해온 변호사·학계·언론계 등의 인사가 줄잡아 1백명도 넘는다면서 이들에게 중앙상무위원 자리는 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상무위원은 자동적으로 전당대회 대의원이 되기 때문에 1백명의 대의원이 확보되는 셈이다. 현재의 대의원은 약8백명.
이에 대해 김 총재 측의 조직 참모인 최형우 의원은『재야 인사 중 정치할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상무위원을 할애할 수 없고 또 재야가운데「4·19」「6·3」민청세대 등은 김 총재를 지지하고 있으므로「재야」라는 막연한 세력으로 신민당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김 총재 측은 유신체제에서 재야가 민주회복을 위해 투쟁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신타도를 위해 신민당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갔던 것이「10·26」사태도 김영삼 총재의 투쟁결과라고 내세운다.
이같이 재야를 평가하는 눈이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에 현저한 차이가 있어 아직은 평행선을 달리고있으나 중도의원들이 조정안을 마련 중에 있다. 이중에는 신민당이 당헌상 재야영입을 위해 남겨놓은 △부총재1명 △정무위원 5명 △중앙상무위원 30명 등 36개자리를 모두 김대중씨와 함께 입당하는 재야에 넘겨주자는 의견이 있고 조금 더 후한측에서는 당헌을 고쳐서라도 대의원수를 대폭 늘리자는 의견을 제시하고있다.

<야측 신당 출현엔 회의적>
김씨쪽에서 입당을 보류하고있는 배경은 두 갈래로 풀이되고 있다. 우선 신민당 안의 표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입당 조건을 기다린다는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김씨가 신민당에 들어가 후보경쟁으로 아전투구를 벌인다면 후보가 되기도 전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사태분석에서 나온 것이란 해석이다.
김제만 의원 같은 이는『김씨 주변에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김종필·김영삼·김대중씨가 삼파전을 벌여도 김대중씨가 많은 표를 얻을 것으로 자신하기 때문에 입당을 선뜻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김씨쪽의 이런 분위기를 입당지연 요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신민당의 많은 의원들은 신민당에서 두 김씨중 누구든 신민당을 떠나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삼파전이 될 경우 야당은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당권파에서는 김씨를 당에 끌어들여 총재라는 지위를 활용해 후보경쟁을 승리로 이끌 계획을 세우고있다.
설혹 김씨가 입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야당분열이라는 지탄을 김씨가 받게 될테니 김 총재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는 느긋한 뱃심이다.
지구당개편대회를 계기로 전북의 남원과 경북의 왜관, 금천 세군데서 폭력사태가 발생한데 대해 일부에서는 당권·비당권파간의「피나는」대결양상으로 보고있다. 이런 사태의 발생원인과 처리방법에서 양파가 크게 의견대립을 보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비당권파의 송원영·노승환 의원 등이 지난24일 정무회의에서 김영삼 총재측이 대통령후보를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지구당위원장을 자파 사람으로 바꾼데서 온 것이라고 공격한 것이라든지 당권파의 최형우·박용만 의원 등이 합법적인 당 결정에 따른 개편대회에 먹칠을 가한 것은 반민주행위라고 규탄한 것 등이 양대 산맥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양파는 폭력사태의 수습과정에서 대립양상을 더 드러낼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난동사건이 김대중씨와 재야의 입당을 더 어렵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신민당 내에서는 김씨 중심의 새 야당이 생길 경우 현재 국회의원 중 몇 명이나 뛰쳐나갈 것인가를 점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의원들은 신당의 탄생을 회의적인 것으로 보고있다.
김씨가 일단 신당을 하더라도 후보지명방법에 양자가 합의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김 총재는『민주주의는 정정당당하게 표 대결을 하는 것이며 패자가 승복하는 것이 야당의 전통』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표 대결을 해서까지 대통령후보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김씨의 현재 입장이다.
지난해「5·30」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의 투표로 총재가 됨으로써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김 총재 측이 표 대결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외의 인기에 있어 압도적이라고 믿는 김씨 측으로서는 이런 외풍을 몰아 사전조정을 이룩하자는 의도로 깔려있다고 볼 때 양쪽은 지명방법에서 쉽게 거리를 좁힐지 의문이다.

<상대방 존중해 손잡아야>
김영삼·김대중씨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거중 조정은 △윤보선 전대통령의 3자회담 추진 △고흥문 국회부의장의 양자 왕복조정 △이기택 부총재의 거중모색 △오세웅 의원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 서명작업등 네 갈래로 추진되고있다.
모두가 중도입장을 취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권위면 에서는 윤 전대통령이 우세하고 집단의 힘을 발휘할 여지는 서명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1년의 7대 대통령 선거에 앞서 유진산 당수가 주류쪽의 김영삼·이철승씨를 놓고 사전에 그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서약서를 받은 후 김영삼씨를 지명해서 김영삼·김대중씨간의 표 대결로 압축되었던 것처럼 이번에 위력을 발휘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당내 의견이다.
서명자들이 27일 모임에서「수권모임」으로 이름을 바꾸고 15명 이내의 소위를 구성키로 했으나 이모임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어떻든 간에 김영삼·김대중씨가 상호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손을 잡을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세의 확립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는 것을 알아야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피차 불행이 기다린다는 것을 경고하는 사람들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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