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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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학창시절 조회 시간이면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은 늘 길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들어 외울 정도가 된 이야기를 오래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은 그분들이 좋아하는 관용구였다. 더위에 쓰러진 학생이 실려 나가도, 추위에 발이 얼어 감각이 없어져도 교장선생님 말씀은 계속되었다. 기이하고 비효율적이라 여겨지던 그 풍경은 성인이 된 후에도 반복되었다.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을 정도의 권력을 가진 남자들은 한번 잡은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했다. 비록 그것이 노래방 마이크일지라도.

 융 심리학은 인간 심리의 깊은 내면에 몇 가지 신화적 원형이 있다고 가정한다. 제우스 원형은 권력지향적인 남자의 내면에 활성화되어 있는 원형이다. 제우스 원형의 남자는 타고난 리더로서 목표를 정하면 빠른 결단력과 행동력으로 그것을 성취한다. 이해득실을 따져 협상하거나 포기하는 일에도 능하다. 가정은 곧 남자의 성(城)이라 생각하며 많은 자식을 낳아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리더로서 그는 모든 이가 자기 말을 듣고, 자기 명령을 실행해 주기를 바란다.

 마음속에 제우스 원형이 조금도 없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남자들의 성향이 구분되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권력을 잡자마자 그것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 사용한다. 실제로 역사상의 권력자들은 큰 성과 많은 여자를 소유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것을 권력자의 특권이라 여기는 이도 있다. 그들은 자기의 나쁜 기분까지 아랫사람에게 쏟아붓는다. 물론 권력을 가지고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남자도 더러 있는데, 그들은 예술가 부류다.

 제우스도 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양면성이 있었다. 그는 올림포스를 평정하기 위해 독수리처럼 날쌔게 목표를 공략하고 벼락을 내리쳐 방해자를 응징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아버지였다.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중재하여 그들에게 힘을 공정히 나누어주었고, 아르테미스와 아테나가 힘의 상징들을 갖도록 지원했다. 남성 운동가들은 제우스적 리더십을 칭송한다. 아버지처럼 국민을 보살피는 지도자, 어떠한 개인적 야심도 품지 않은 채 오로지 공동체의 복리만을 생각하는 리더를 꿈꾼다. 그들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아버지의 자질들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돌봐주고, 격려하고, 도전케 하고, 훈육하는 등의 특성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