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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지글지글 … 가마솥에 튀긴 옛날통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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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여름 치맥(치킨과 맥주)의 계절이 되면 수원시 팔달문 인근 통닭거리는 불야성을 이룬다. 17일 오후 통닭거리의 한 점포에서 고객들이 가마솥에 닭 튀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 수원시]

지난 16일 오후 11시 경기도 수원시 화성 팔달문 인근 ‘매향통닭’ 집 앞 거리. 4인용 플라스틱 테이블 10개가 꽉찼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는 이른바 ‘치맥(치킨+맥주)’. 그런데 치킨이 좀 다르다. 닭을 조각 내 옷을 입혀 튀긴 후라이드 치킨이 아니다. 튀김 옷 없이 한 마리를 통째로 가마솥 기름에 튀겨 낸 1970년대 식 통닭이다. ‘전기구이 통닭’도 등장하기 전에 먹던 고전적 메뉴다. 점포 안의 40개 테이블 역시 이런 통닭을 먹는 손님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같은 메뉴를 파는 인근 ‘남수통닭’ 역시 발디딜틈 없었다. 매향통닭 앞 거리 테이블에서 통닭과 맥주를 먹던 이성균(34)씨는 “서울 문정동에서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수원의 명소’라고 하길래 와봤다”며 “아직도 가마솥에 닭을 튀기는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치맥’의 계절 여름을 맞아 수원 통닭거리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올초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타격을 받고, 월드컵 기간에 국가 대표 축구팀 성적이 좋지 않아 기대했던 만큼 매상을 올리지 못했지만 더위가 찾아오면서 늦은 밤 맥주에 치킨을 찾는 고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통닭거리에 있는 11개 점포에서 주말이면 하루 평균 닭 5000마리가량이 팔린다.

 이곳은 특히 옛날식 통닭을 그대로 파는 것으로 이름났다. 1970년대부터 4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이다. 당시 수원시에 잇닿은 화성군(현 화성시)에 도계장이 생기면서 이쪽에 통닭집들이 들어섰다. 환경 규제가 없던 때라 닭을 잡은 뒤 털과 내장을 인근 수원천에 그냥 버릴 수 있다는 지리적 여건이 작용했다. 한 때 30곳 넘는 통닭집이 있었으나 외환위기로 인해 많이 문을 닫고 현재는 11곳이 영업 중이다.

 밤에는 물론 옛추억을 찾아 낮에 오는 손님도 있다. 16일 점심에 용성통닭에 온 김상미(51·여·분당 서현동)씨는 “예전에 남편과 데이트할 때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수원 통닭거리엔 매향통닭처럼 옛날식 통닭 한 가지만 내놓는 곳도 있고, 다양한 입맛의 고객을 잡기 위해 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치킨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 값은 11집 모두 옛날식 통닭이 한 마리에 1만4000원이다. 2대 째 이어오는 전통집은 매향·남수·장안·용성통닭 4곳이다.

 통닭과 함께 무 초절임은 어디든 기본으로 나온다. 다른 서비스 곁두리 메뉴를 주는 곳도 있다. 용성통닭에선 닭발 튀김, 장안통닭은 무한 리필 통마늘튀김, 남수통닭은 김치와 메추리알, 멸치볶음을 곁들여 낸다.

 수원처럼 완전한 전통식 통닭은 아니지만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변형 전통식 통닭거리가 있다. 제일시장 옆 골목으로 44년된 용천통닭 등 5곳이 자리했다. 집집마다 조리법이 각기 다르다. 용천통닭은 600g 작은 닭에 통째로 옷을 입혀 가마솥에 튀긴다. 닭이 작은 대신 값이 싸다. 한 마리에 6000원, 두 마리에 1만1000원. 시어머니에 이어 며느리 이재희(54)씨가 2대 째 가업을 잇고 있다. 염통과 모래주머니(닭똥집)역시 튀김옷을 입혀 튀겨서는 서비스로 주는 게 특징이다. 주인 이씨는 “최근 대전에서 ‘오토바이 탁송(퀵 서비스) 요금을 부담할테니 40마리를 보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원=임명수 기자, 의정부=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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