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80년대의 한국연극을 조망하는데 있어서 우선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80년대 전반은 7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극 계의 여러 가지 현상과 휘후들이 계속되고 발전하리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연극의 양적 팽창이 요질적인 심화라 할 수 있다.
또한 8O년대는 7O년 대적인 혼란과 모색의 결과로서 안정과 정착을 꾀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사회 자체의 연극화 현상이 더욱 가열될 80년대에 무대공연과 관객의 수는 더욱 증가할 것이고 이 같은 양적 팽창에서 공연장과 공연법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금년 문예진흥원의 극장이 완성됨과 동시에 「세실」극장이 폐쇄된다면 각 극단이 자가의 극장을 가져야 된다는 염원을 더욱 촉발시킬 것이며 그 결과 많은 소극장이 탄생할 것이다.
물론 현행 공연법의 개정이 전제돼야 한다.
연극의 양적 증가는 이보다 극단의 자립이라는 과제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 극단 자립의 문제는 80년대가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줘야 될 과제인데 그것이 7O년대의 몰가치적 상업주의에만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상업주의가 예술에 가하는 압력은 정치적 압력 못지 않게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주의가 우리 극 계를 당분간 더 지배하리라는 예상은 그리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예술을 보호하겠다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며 각 개인이 예술적 가치를 금전적 가치로 치환하는 풍조를 예술가 적 입장에서 반성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 같은 반성은 아마도 80년대 후반에 가서야 이뤄질 듯하다.
오늘날 우리 연극은 예술적인 내용 그 자체보다도 연극적 세련성과 원숙성, 그리고 서투른 「아마추어리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고도의 전문성을 띠는 문제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80년대는 「액터즈 스튜디오」같은 공적인 연기수련기관이 창설돼야하며 무대기술을 포함한 전반적인 공연 술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제작「워크숍」 이 활발히 시행되어야 한다.
70년대 연극의 가장 큰 변화는 「리얼리즘」연극 양식으로부터의 해방이라 할 수 있다. 이 한정된 구속적인 극 형식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연극들은 앞으로 계속 갖가지 형식과 형태를 시험하며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연극들은 적어도 우리시대의 우리의 삶을 적절히 표현해줄 보편적인 형식을 찾기까지 끊임없는 모색과 실험을 계속할 것인데, 이 점에 있어서 앞으로 소극장의 기능과 역할은 중요하며 소극장 본연의 의미를 찾아 나갈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연극이 완전히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다 자유로운 문화 환경 속에서 이제까지 억압돼왔던 정치·폭력·성에 대한 충동이 보다 사실적으로 폭로되며 우리의 동시대적 삶이 생생하게 무대 위에 재현될 것이다. 이는 연극이 이제까지 우회해왔던 현실을 직시하고 그와 맞부딪침을 뜻하며 연극 속에서 관객이 자신의 삶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된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리얼리즘」연극은 참된 뿌리를 내리고 성숙해 갈 것이다.
한편 한국인의 본질적 심성과 삶의 원형적 「패턴」을 추구하는 작업 역시 활발하게 계속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문화의 기ㅇ을 더듬어보는 작업이며 오늘의 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생요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한국연극이 세계연극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가치 있는 문화적 기여가 될 것이다. 최인동과 오태석의 활동이 기대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안민수· 유덕형·허규 역시 작가 겸 연출가 적 입장에서 그러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전통 연극의 양식과 기법이 우리의 현대극에 어떻게 포옹되고 융합될 것 인가도 80년대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형식과 내용을 늘 분리시켜 생각해왔던 과거의 작업을 지양해보려는 오늘의 노력은 그 자체가 성숙이며 발전으로서 앞으로 보다 통일적 상상력의 개화를 예상케 해준다.
80년대 한국연극의 이 모든 가정과 전망은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따른다. 연극은 유독 사회성이 강한 예술이다. 연극은 그것을 생성·발전 시켜 주는 정치적 사회적인 환경에 절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8O년대의 전망은 80년 대적인 객관적 여건에 절대 지배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시대의 의식과 환경을 개혁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왔던 빛나는 연극의 전통과 사명이 80년대 이 땅에서 다시 한번 살아난다면 연극은 참으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체험이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