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과의 1문 1답|김계원의 법정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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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본을 2년 수료한 뒤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는가.
-예.
▲언제 준장에 진급했는가.
-1950년이다.
▲그 뒤에 거친 요직은?
-포병감·사단장·육본정보참모부장·군단장·국방부차관보·1군 사령관·육군참모총장을 거쳐 69년 11월 육군대장으로 예편, 중앙정보부장·주중국대사를 거쳤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언제 임명됐는가?
-78년 11월 22일부터 79년 10월까지 근무했다.
▲비서실장의 임무는?
-행정적으로 대통령을 보필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신변의 위협이 있을 때는….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
▲김재규 피고인과의 관계는….
-4·19 직후 육대총장 발령을 받고 가보니 김재규가 부총장으로 있어 그때부터 친근하게 지냈다.
당시 박대통령이 군수기지 사령관이어서 보급문제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김재규 피고인을 앞세워 도움을 받았다. 언젠가 마산에서 육·해·공군수물자 합동상륙훈련을 참관하고 그날 밤 육·해·공군 장병들이 회식을 가진 일이 있다.
이날 밤 돌아오다 김재규의 「지프」가 20여m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김재규의 생명이 위험했었다. 내 차는 2백여m 뒤를 따라가다가 앞에 가던 김재규의 차가 보이지 않아 차에서 내려 절벽을 내려가 피투성이가 된 그를 발견, 구해준 일이 있다.
그 뒤로 김재규는 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또 내가 1군사령관일 때 6사단장을 지냈고 내가 정보부장이었을 때 보안사령관이어서 업무상 자주 만났다.
내가 중국대사로 근무할 때 건설부장관이었던 김재규 피고인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오는 길에 대만에 들러 이틀 동안 같이 지낸 일이 있다. 그때 나는 김재규에게 『대통령을 만나거든 본국에 돌아가고 싶어하더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었다.
▲6·3사태 때 김재규 피고인이 6사단장으로 계엄군을 이끌고 서울에 온 일이 있는가.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계엄군으로 온 일이 있다.
▲차실장의 인간성과 피고인과의 관계는….
-차실강과 나는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가 없다. 그가 국회의원일 때 부대방문을 하여 몇 번 인사를 나눈 일이 있었고 중국대사 때 차실장이 국회외무분과위원장으로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어딘가 가던 길에 대만에 들러 비행장에서 15분 동안 얘기한 일이 있는데 이것이 단독으로는 처음 만난 것이다.
차실장과는 업무상 한계가 있다. 월권은 서로 없었다. 그러나 차실장의 성격이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이며 경호실장으로서는 정치적으로 너무 깊이 개입했었다.
▲대통령비서실장에 부임한 뒤 부임인사차 차실장을 예방했으나 차실장은 이에 대한 답례방문을 안했다는데….
-그렇다. 부임예방을 했으나 1주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나의 보좌관에게 평소 경호실장이 비서실장 방에 오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보좌관은 온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볼일이 있으면 차실장이 피고인에게 찾아와야 하는데 오지 않은 채 『비서실장 오라고 해』라고 했다는데….
-『오라고 해』는 아니지만 『좀 보자』고 한 일은 있었다.
▲대통령을 접견할 때 차실강이 『급히 볼일이 있다.』라면서 비서실장을 비롯한 다른 접견대기자를 못 들어가게 막아놓고 자기가 먼저 들어갔다는데….
-그렇다. 그러나 비서실장인 나는 어느 누구도 대통령접견을 막을 수 없다.
▲차량을 타는 순서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비서실장이 경호실장보다 서열이 뒤이기 때문에 먼저타야 하는데 차실장이 먼저 타고 가면서 비서실장을 뒤에 오게 했다는데….
-사실이다. 그러나 경호실장은 대통령 경호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손아래 사람이어서 그 행동이 불쾌했었다.
▲차실장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한 실례를 대 달라.
-말할 수는 있으나 개인의 명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말하겠다.
▲차실장이 존칭어를 쓰지 않고 누구에게나 반말을 했다는데.
-그렇다.
▲차실장의 월권행위란….
-차실장이 정치문제에 깊이 개입했으며 군의 지휘계통을 문란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언젠가는 이런 사람(차실장)을 내보내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었다는데….
-내보내는 것이 아니고 시정해 주도록 건의할 생각이었다.
▲차실장과 김재규 피고인과의 사이는….
-특히 나빴다. 그러나 업무상 자주 만났다.
▲5·16 이후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한 암투가 있었고 신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암투가 있었다는데….
-정치는 정보부 소관인데도 차실장이 관여해서 김재규 피고인이 못마땅해했다.
계속해서 차실장이나 김재규 피고인은 각하의 신임이 두텁다고 서로 자부해왔다.
그래서 서로 견제했다.
▲전당대회의 결과에 따라 정보부에 비난이 돌아가자 이를 차실장의 농간이라고 김재규 피고인이 불만을 털어놨다는데.
-차실장이 중간에 가로채서 일만 그르쳤다고 말한 일이 있다.
▲경호실과 정보부가 각각 따로 했는가.
-그런 것 같으나 자세히 모른다.
▲김재규 피고인과는 매달 어느 정도 만났는가.
-공적으로 10번, 사적으로 4∼5차례 만났다.
▲만날 때마다 김재규 피고인이 차실장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비난하고 정치얘기를 많이 했다는데.
-그렇다.
▲차실장은 강경하고 피고인은 온건하며 이것은 성격상 차이인데 어떻게 관계가 악화되느냐. 김재규도 마찬가지 얘기를 했는데.
피고인이 김재규와 자주 만날 때 김재규는 차실장에 대한 불만을 많이 얘기했다는데.
-그렇다. 예를 들면 김재규와 나는 차실장에 대해 비난할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나도 차실장도 각하를 모시고 나도 비서실장인데 이런 관계악화가 바깥에 알려지면 안좋다.』고 비서실 직원들에게 당부를 하기도 했다. 또 차실장의 태도문제에 관해 각하에게 건의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김재규가 『육군대장이 대위와 싸우면 남들이 뭐라겠느냐』고 말해 참았다.
김재규는 때때로 극도로 흥분해서 『차실장을 해치워야겠다.』는 등의 극단적인 얘기를 여러번 했었다.
김재규는 궁정동 식당사무실에서 그런 얘기를 여러번 했다.
▲김재규는 자신이 대범하기 때문에 차실장을 안중에 안뒀고 피고인이 차실장을 미워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피고인과 김재규의 진술은 서로 대치되지 않는가.
-차실장을 비난할 때 나도 공감해서 얘기를 나눴을 뿐 누가 차실장을 더 강하게 미워하느냐, 약하게 미워하느냐 할 수가 없다.
차실장이 정치문제 등에 개입 못하도록 각하께 건의할 생각이었다. 김재규의 차실강에 대한 불만은 깊었다고 생각한다.
▲김재규의 차실강에 대한 악감정은 본심이라고 해도 좋으냐.
-감정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김재규가 점심 때 식사를 같이하고 나오면서도 내방에 들러 『밥을 얻어먹고 나오긴 하지만 그 친구 기분 나쁘게 밥을 먹으러 오라 가라 한다. 얘기가 있을 때마다 자기가 오지 않고 나를 부른다.』고 비난했다.
▲요직개편설이 나올 때마다 김재규는 불안해 했다는데 요직개편에 대해 아는 바는.
-전혀 아는바 없다. 외부에서 그런 얘기들이 들린 줄 안다.
김재규는 외부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남자란 뺄 때(물러난다는 뜻)가 중요하다.』(일본어로 말한 뒤 설명)는 말을 자주 해 왔다.
김재규는 나도 『중앙정보부를 그만둬야할 때 그만둘 수 있도록 그 시기를 내게 알려달라』고 나에게 몇 번 얘기했다.
김재규가 요직개편설을 듣고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내가 알기에는 각하가 연중에는 요직개편을 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안다.
▲김재규는 『남자는 깨끗해야 한다.』는 등 5월을 전후해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는데.
-그렇다.
▲궁정동 만찬소식은 언제 들었나.
-10월 26일 하오 4시30분 전후에 차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오늘 하오 6시에 각하를 모시고 만찬을 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6시 정각까지 김재규에게 가라는 내용이었다.
▲어디서.
-사무실에서.
▲궁정동 사무실로 바로 갔느냐.
-그렇다.
▲몇 시에 도착했는가.
-하오 5시45분에서 50분 사이다.
▲중정식당에서 50m 떨어진 부장집무실에서 처음 만났느냐.
-그렇다.
▲통상 만찬 때 식당으로 따라가지 않느냐.
-중정요원이 안내하기 전에는 어디가 어딘줄을 모른다. 보좌관도 못 데리고 들어간다. 정문 앞에서 안내인이 나와 안내하면 부장이 나와 맞는다.
▲처음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가.
-처음엔 김재규를 위로했다. 10월 26일 전 3∼4일간 정치문제로 김재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김재규에게 『나는 애를 썼는데도 안됐다. 과거 내가 중정부장 때도 그랬었지만 정치문제는 생각대로 간단하게 잘 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앉아서 답변해도 좋다고 했으나 김피고인은 「괜찮다」고 몇 번 사양하다가 앉았다.)
▲김재규도 그 당시 각하의 신임을 얻으려 한 것이 사실이냐.
-맞다.
▲부산·마산사태의 어려움을 사무실에서 식당으로 걸어오면서 했느냐.
-길이 좁아 식당으로 오는 중에는 별 얘기를 못했다.
식당 앞 정원에서 기다리며 얘기했다..
▲그 당시 현장 부근에 육군참모중장과 김정섭중석차장보가 있었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느냐.
-식당 앞에서 들었다. 김재규가 『오늘 갑자기 웬일이냐』고 물어 『모르겠다. 삽교천 갔다 와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이때 『나도 육군참모총장을 초대했는데』라고 말해 총장이 부근에 온 것을 알았다.
▲식당 정원에서 들었느냐.
-그렇다.
▲식당정원 경계석에 앉아 했느냐.
-맞다.
1차 조사 때는 잘 모르겠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진술을 강요한 일이 있느냐.
-그런 일은 없고 그냥 수사기록을 사실이라고만 했다.
▲1차 수사 때는 모르지만 검찰수사에서는 어떻게 답변했느냐.
-『1차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써주시오.』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만일 피고인이 수긍하지 않으면 『농담이오』라고 말한 뒤 현장에서 피고인도 살해하려고 했다는데….
-김재규가 왜 그런 진술을 했는지 모르겠다.
▲김피고인이 차실장을 극도로 미워해서 알아들을 줄 알았다고 김재규 피고인이 말했는데.
-차실장에 대해 성격적으로 불만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도 많았다. 각하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 입장을 변명해 줬다. 한번은 고향에서 아버님이 『어머니가 위독한데 와 줄 수 없겠느냐』고 밤 11시 넘어 전화를 한 일이 있는데 차실장이 이것을 알고 각하의 「헬리콥터」를 내 줬다. 실장은 업무수행을 위해 그 같은 성격이 필요할 수도 있다.
▲김재규 피고인이 뒷일을 부탁한다고 했을 때 각하 앞에서 김재규 피고인이 차실장을 죽이면 자기도 죽게되는데 각하에게 이야기해서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했다고 수사과정에서 말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그런 말을 들었으면 김재규 피고인의 입장을 설명해 줄 수도 있지 않으냐고 이야기한 일은 있다.
▲사건당시 그랬는가.
-당시는 아니다.
▲안에서 총성이 나면 경호관이 달려들고 육탄으로 각하가 서거할 가능성도 있었는데 서거하면 어떤 혼란이 오겠다고 생각했는가.
-극도의 혼란이 온다고 생각했다. YH사건, 「카톨릭」 농민회, 여야대립에 의한 국회공전, 김영삼총재 제적, 신민당의원사퇴, 부·마 지역계엄 선포 등으로 국내는 물론 당시 대외사정도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면 혼란이 온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각하는 만찬장에 몇 시에 도착했는가.
-하오 6시부터 6시5분 사이로 알고있다.
▲만찬석의 위치는….
-문 입구에 본 피곤인이 앉고 그 왼쪽에 김재규 피고인, 맞은편에 각하, 모퉁이에 차실장이 앉았다.
▲김재규 피고인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였는가. 20∼30㎝….
-그 사이에 물병이 놓여있었다. 30∼40㎝정도 될 것이다.
▲20㎝정도였다는데.
-예.
(이때가 상오 11시50분으로 검찰관이 질문을 계속하려 하자 재판장이 『검찰관, 오전은 이걸로 휴정하지』라고 말하면서 휴정을 선언, 하오 2시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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