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는 왜 강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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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사태의 진전방향은 미-「이란」관계뿐 아니라 앞으로 국제정치·경제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거인 미국을 당혹시키고 있는「호메이니」의 회교혁명이념 역시 주변회교국가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최근의 사태를 몰고 온「호메이니」의 힘의 원천, 「이란」의 경제적 현실 및 이번 사태가 주변국가에 파급될 영향을 「시리즈」로 진단해 본다. <편집자>
『「아야툴라·호메이니」는 거칠고 원시적이지만 천재다.』
지난 6일사임한「바자르간」전「이란」수상의 말이다.

<인구95%가 「시아」파 회교도>
또 현재의「이란」외상「아볼·하산·바니-'사드르」도 『「호메이니」는「이란」의 거울』이라면서 「이란」에 많은 반「팔레비」세력이 있으나 그 어떤 집단도 반왕세력 전체를 주도할 조직력이 없기매문에 「이란」의 양심과 미래의 방향을 반영하는 「호메이니」만이「이란」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메이니」가 「이란」 전체를 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배경에는 「아야툴라」 또는「이맘」으로 불리는 그의 종교지도자로서의 위치와 회교를 바탕으로 한 정치·경제. 사회관 그리고 여기에 매료된 성직자·학생·상인·서민층과 행동력을 갖춘 혁명무장세력이 있다.
이들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호메이니」가 펼치는 정치수완은 「회교식 민주주의」개념에 바탕하고 있다.
「바자르간」은「호메이니」의 회교식 민주주의는 동양의 가부장적 통치방식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회교와 「아랍」 민족주의, 뿌리깊은「이란」의 역사적·문화적 전통, 오랜 피착취상태에서 잉태된 반서구사상, 「팔레비」학정에 대한「아랍」적 보복주의 I이 모든 정신적 유산을 오늘날 「호메이니」와 그 추종자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공유·공감하고 있다. 이런 토대위에서 종교지도자이며 혁명투사인 「호메이니」의 가부강적 통치가 가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호메이니」의 지지세력중 가장 주체적인 것은「회교혁명평의회」로 알려져 있다.
혁평은 「호메이니」의 뜻과 명령을 받들어「이란」혁명을 주도해나가면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혁평의 구성은 대충 15명 내외의「엘리트」로 돼있으며 이 가운데 반수가량이 회교성직자다.
따라서 혁명평의회는 사실상 회교성직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천2백만의 인구 가운데 95%가 「시아」파 회교도인 「이란」에는 지도자적 성직자가 6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더큰 영향력을 가진 「아야툴라」가 12명, 최고회교지도자인 「이맘」이 3명이다.
「시아」파가 보통 「전통주의자」로 불리는 외곬의 종교관과 그것이「이란」정치에서 차지하는 현재의 비중이 오늘의「이란」정치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호메이니」에 반대하는 회교성직자가 없지 않으나 그들은「호메이니」의 과격한 노선에 우려를 표시하는 정도의 「온건지도자」들로서 적극적인 반「호메이니」행동은 못하고있는 것같다.
현재「테헤란」의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주도하는 대학생들은 「호메이니」의 의사와「이란」의 민심을 행동으로 대변하는 전위세력으로 돼있다.

<대학생은 호메이니 전위세력>
학생들이 서구의 문명과 문화를 본질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란」 대학생들은 서구문명을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맹렬히 공격하고 절대권력을 철저히 거부하는「호메이니」의 목소리에 사로잡혀있을 뿐이다.
「팔레비」보다도 더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호메이니」를 학생들이 그처럼 영웅시하여 추종하는 것은 그를 정치적 독재자나 절대권력자가 아닌 종교적이고 정신적 지도자로 믿기 때문이다.「바자」로 불리는「이란」의 상인들이「호메이니」를 받드는 것은 무엇보다드「팔레비」시절 왕족이나 고위층이 이익을 독점했던데서 오는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테헤란」시내에서만도 6만개의 점포를 장악하고 있는「바자」상인「그룹」이 고용인을 합쳐 몇백만명이 되는 사람수로 「호메이니」를 지지하고 있다.
또 서민층파 빈민층의 「호메이니」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기대가 그를 신봉의 대상으로 따르고 지지하는 이유가 되고있다.
30%에 이르는 실업자와 만성적인 주택문제로 고통을 받았던 대중은「호메이니」의 급진적 정치개혁을 환영하는 쪽이다.
그러나 이들 지지세력을 힘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1∼2만명에 달하는 혁명군들이다.
「팔레비」왕 시절에 「게릴라」 또는 반왕무력 집단으로 싸워온 이들은 현재「이란」정규군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페다엔」이나 「모자히딘」등 회교「게릴라」와「투데」등 공산세력은「호메이니」의 노선에 근본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면서도 혁명군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게릴라·공산세력 크게 약화>
서구식 교육을 받았던 지식층이나「팔레비」의 은혜를 입었던 구상류층들의 사정도「투데」 등 공산세력과 다름없이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는 숨을 죽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란」군은 혁명 성공당시 정치적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혁명의 소용돌이로 인한 피해를 스스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할할리」가 주도한 혁명재판소가 50여명의 군장성·영관급 지휘관을 숙청함으로써 미국에 길들여진「이란」정규군은 구심점을 잃고 「호메이니」의 지시를 묵묵히 마르고있다.
군의 정치적 기능이 약해졌다는 것은「호메이니」가 가장 우려했던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극소화시킴으로써「호메이니」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고 있기도하다.
이같은 광범의한 지지세력과 약화된 반대세력위에서 「호메이니」가 회교식 민주주의를 펴나가고 있다. 그의 통치는 12월초 회교헌법채택이후에는 더욱 경착될 것같다.
「호메이니」가 회교성직자나 학생·상인·무장혁명세력에 지엽적인 귄력을 할애하면서 이들의 뜻을 수용하고 기본적인 줄거리를 스스로 결정, 이를 자기방향에 맞게「천재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데서 「호메이니」의 절대권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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