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조치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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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성·명인·본인방·기성·십단·왕좌.
모두가 구름위에 솟아있는 일본기승의 최고봉들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바라볼수도 없는 일종의 꿈의영 봉.
일본에는 9단만도 30명이 넘는다. 8단은 그 곱절이 더 넘고 그 아래의 전문기사들이 모래알처럼 많다.
그러나 해마다 그 여섯 최고봉을 차지하는것은 정해진 몇사람뿐이다.
이들을 제치고 10일 조치훈8단·이 기성이 되었다. 그것도 대죽명인을 3연승으로 제치고….
지난 74년말. 청년이라기보다는 소년에 더 가까운 18세의 조치훈6단은 일본기원선수권전에서 석전명인 겸 본인방, 대죽9단, 임해봉십단을 차례로 꺾고 공식 「타이틀」전 최연소의 도전자가 되었다.
드디어 판전9단과의 5번기가 시작되었다. 제1국, 제2국 모두 조소년의 불계승. 한판만 더 이기면 되었었다.
그러나 나머지 3국을 그는 모두 지고 말았다. 모두 역전패.
특히 마지막 한판에선 다 이긴 국면을 한수 실수로 승리의 영광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어린 조소년이 옆방에 들어가서 호느껴 울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는 생생한 일이다.
물론 그런지 두어달후에 그는 「프로」10걸전의 결승에서 3연승하여 사상 최연소의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그는 오랫동안 「슬럼프」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지 4년.
누구에게나 실패와 좌절은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사람을 키워주기도 한다. 어떻게 좌절을 이겨나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진다고 봐야 옳다.
조치훈8단에게 있어서는 4년전의 판전9단과의 마지막 한판이 다시 없이 소중한 약이 되었다고 할만하다.
몰론, 그 엄청난 좌절의 쓰라림을 씻고 최고봉의 하나를 차지하기에 이른것은 그의 남다르게 강인한 의지와 끈기 탓이었으리라.
바둑은 가로19줄·세로19줄, 그것이 교차하는 3백61개의 점과 선상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그세계는 무한히 넓고도 깊다. 그것은 사람의 힘이 무한한 것과도 비견된다.
아무리 「컴퓨터」에 바둑의 「룰」을 알려주고 사람과 승부를 겨루게하여도 사람을 이기지는못한다.
여기에 바둑의 불가사의가 있다. 여기에 또 바둑의 참맛이 있다.
바둑은 단순한 승부다투기가 아니다. 단순한 기량싸움도 아니다.
의지·체력·인격·집중력의 모든것을 겨루는 것이다. 그런 경기에서 조치훈군은 이긴 것이다. 그는 이젠 소년도 청년도 아니다.「기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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