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머리 아프게 한 죄 … 법정 드라마 '흥행 실패'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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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MBC ‘대한민국 변호사’(왼쪽), KBS ‘파트너’(오른쪽) 등 법정드라마의 흥행 부진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사진 KBS·MBC]
조기종영한 MBC ‘개과천선’의 주연 김명민. [사진 KBS·MBC]

‘법정드라마 필패’라는 방송가의 징크스가 작용한 것일까. 키코 사태, 동양증권 사태 등 신문 1면을 장식했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룬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지난달 26일 막을 내렸다. 당초 20회로 기획됐으나 16회로 조기 종영했다. 마지막 회에선 그동안 벌여놓은 복잡한 이야기들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최종회 시청률은 8.1%(닐슨코리아). 세월호 침몰 사고와 지방선거 등의 영향도 따져 봐야겠지만 법정드라마 징크스도 피해가지 못한 듯하다. 2000년대 이후 방영된 법정드라마가 대부분 그랬다. SBS ‘로펌’과 ‘신의 저울’, MBC ‘변호사들’과 ‘대한민국 변호사’, KBS ‘파트너’ 등 본격 법정물들이 시청자로부터 외면받았다.

 이런 성적표는 ‘전문직 라이벌’인 의학드라마의 성공과 비교할 때 더 초라해 보인다. 의학드라마는 편성됐다 하면 히트를 치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MBC ‘종합병원’ ‘의가형제’ ‘해바라기’ 등은 최고 시청률 40% 내외의 ‘대박’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MBC ‘하얀 거탑’과 ‘뉴하트’, SBS ‘외과의사 봉달희’, KBS ‘굿닥터’가 시청률 20% 남짓의 시청률을 보였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SBS ‘닥터 이방인’도 최고 시청률 14%로 비교적 쏠쏠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법정물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건 의학물에 비해 어려운 이야기 구조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과천선’은 초반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변호사가 기억을 잃은 뒤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설정이 흥미를 자아냈다. 하지만 경제 범죄를 주축으로 하다 보니 시청자에게 사건을 이해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박준서 JTBC 드라마PD는 “잘 된 의학드라마는 병원을 배경으로 갈등·사랑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 성공했다”며 “법정드라마도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복잡한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압축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드라마의 속성 상 주제가 무거운 점도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2005년 나온 MBC ‘변호사들’은 작품성 면에선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10%선을 오르내렸다. 당시 동시간대 편성돼 시청률 30%의 인기를 누린 SBS ‘패션 70s’에 비해 어두운 내용이 부담이 됐다.

 2008년 방송된 SBS ‘신의 저울’은 살인사건에 연루된 주인공의 갈등과 우정을 절묘하게 그려내며 그해 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상을 수상했지만 10% 초반의 시청률에서 허덕였다. 정덕현 방송평론가는 “의학드라마는 생사 문제를 다루기에 누구나 거부감 없이 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정드라마는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다른 사건이 있어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추세는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를 이루고 스릴러·수사물은 드문 국내 드라마의 전반적 제작 흐름과도 상통한다. 법정드라마로선 거의 유일하게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둔 지난해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역시 치열한 논리싸움을 다룬 정통 법정드라마라기보다 멜로드라마에 가까웠다.

 SBS 이용석 드라마PD는 “이제까지 드라마의 재미면에선 법정물이 의학물에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최근 스릴러물이 인기를 얻는 것처럼 법정물 주인공의 정의감에 시청자를 감정 이입시킬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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