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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힐링투어] 저녁놀에 물든 염부의 등허리엔 삶의 숙연함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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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32면

해질 녘 염전은 부산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염부는 하루의 노동을 마감해야 한다. 하여 염부의 노동은 거룩하고 숭고하다. 조용철 기자

염전(鹽田). 누가 이 얕은 바다를 보고 맨 처음 밭이라고 불렀을까. 소금이 나는 밭. 꽤 시(詩)적인 이름이다. 염전은 그러나 소금이 나는 밭이 아니다. 소금을 캐는 밭이다. 염전에 가면 알 수 있다. 소금은 스스로 나지 않는다.

<10·끝> 전남 신안 태평염전

‘나는 것’과 ‘캐는 것’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소금을 캐고 거두어 만드는 사람. 염전에서는 그들을 염부(鹽夫)라 부른다. 농부·광부·어부 모양 염부다. 염부의 일터가 밭이므로 염부의 노동은 농사다. 하여 염부는 소금 농부다.

전남 신안군 증도. 신안군에 속한 1004개 섬 중 하나다. 주민 2000명이 겨우 넘는, 서해안 남쪽의 작고 외진 섬이다. 증도는 여전히 작지만 더 이상 외진 섬이 아니다. 증도는 섬 어귀의 염전 하나로, 다시 말해 소금 하나로 명소로 거듭났다.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됐고, 이듬해 섬에 자리한 태평염전과 소금창고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염전이다. 462만㎡로 여의도 면적의 두 배 가까운 크기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이 갯벌을 일궈 소금밭을 만들었다. 태평염전에는 현재 염부 15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염부는 일종의 소작농이다. 삯만으로 연명하지 않는다. 소출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배당을 받아간다. 봄에서 가을까지 염부는 염전 옆에 마련된 숙소에서 먹고 자며 소금을 생산한다. 가을이 지나면 염부는 염전을 떴다가 이듬해 봄에 돌아온다. 요즘엔 염부라는 말을 잘 안 쓴다. 어지간하면 소금장인이라고 높여 부른다. 숙련된 염부가 줄어 장인이라 치켜세우는 것이다. 염부든 장인이든 그들의 벌이는 보잘것없다. 1년에 1000만원을 겨우 맞추는 형편이다.

태평염전은 국내 최대 염전이지만 연 매출은 다 합쳐 60억원에 불과하다. 쓰레기 다음으로 싸다는 소금 값 때문이다. 염부는 30㎏ 한 포대에 6000원을 받고 회사에 소금을 넘긴다. 서울에서 태평염전 천일염은 10㎏짜리 한 포대가 약 2만5000원에 팔린다. 10년째 소금 가격에는 별 차이가 없다.

소금은 사람이 만든다. 햇볕 아래에서 마냥 기다린다고 바닷물이 소금으로 환생하지 않는다. 우수한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 더 많은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바투 붙어 있는 소금밭에서 똑같은 시간을 들여도 한 해 수확량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염부의 정성과 숙련도가 낳은 차이다. 소금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바닷물이 21번 꺾여야 흰꽃 송골송골
한낮의 염전은 적요하다. 뙤약볕 내리쬐는 한낮에는 염부도 염전에 나오지 않는다. 광활한 대지 위에 반듯이 구획된 소금밭이 가지런히, 오른쪽 지평선에서 왼쪽 지평선까지 중단 없이 놓여 있을 따름이다. 염전의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시간마저 멈춰 선 듯한 풍경. 한낮 염전의 미장센이다.

그러나 한낮의 염전은 나름대로 바쁘다. 염전에 갇힌 바닷물이 제 몸에서 물을 빼느라 해종일 부산을 떤다. 해가 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제 몸을 말려야 하루를 허비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다들 무언가로 바쁘다. 바닷물이 증발해 소금이 맺히기 시작할 때 염부가 외치는 말이 있다.

“소금이 온다!”

염전 바닥을 들여다본다. 소금 결정이 빛나고 있다. 염전 바닥의 소금 알갱이는 봄날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별꽃을 닮았다. 작고 하얀 알갱이가 바닥에서 송이송이 반짝인다. 알알이 맺힌 소금 알맹이를 염부는 “소금 꽃”이라고 부른다. 해질 녘 염전에서는 날마다 꽃이 피어난다.

염전의 구조를 알아야 소금의 생성 과정을 알 수 있다. 염전의 단위는 정보(町步)다. 정보는 3000평 정도 되는 큰 땅이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염전은 정보마다 독립된 생산체계가 갖춰져 있다. 염전 한 정보에는 저수지 1개와 증발지 여러 개, 그리고 결정지 1개로 구성된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저수지부터 증발지를 거쳐 결정지까지 차례를 밟아야 한다.

우선 저수지에 바닷물을 가득 담아놓는다. 이어 갯고랑을 내 칸칸이 나뉜 증발지에 차례로 물을 옮긴다. 염부는 이 과정을 “물을 꺾는다”고 부른다. 언뜻 평평해 보이지만 증발지마다 3㎝ 정도의 높이 차가 있다. 저수지 쪽이 가장 높고 결정지에 가까울수록 낮아진다. 예전에는 수차를 돌렸지만 지금은 양수기를 돌려 물을 꺾는다.

염부는 이른 새벽 염전에 나와 저수지에 물을 담고 순서대로 증발지를 돌며 물을 꺾는다. 염부가 아침마다 물을 꺾는다는 건 바닷물이 증발지 한 곳에서 최소 하루를 머문다는 뜻이다. 어제 아침 이 증발지로 꺾은 물을 오늘 아침 다음 증발지로 꺾고 내일 아침에는 그 다음 증발지로 꺾는다. 증발지마다 들렀다 나온 물이 결정지에 다다랐을 때 물은 비로소 소금이 될 자격을 얻는다. 소금은 결정지에서만 수확한다.

소금을 쌓아두는 창고. 보통 3년을 묵혀 간수를 뺀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소금이 짠 이유는 염부의 땀 때문”
물을 많이 꺾을수록 소금이 좋다. 더 많은 햇볕과 바람에 노출돼 있어서다. 물을 많이 꺾으려면 염전이 커야 한다. 태평염전은 보통 21번 물을 꺾는다. 염전 한 정보에 저수지 1개, 증발지 19개, 결정지 1개가 있다는 뜻이다. 저수지에 담긴 바닷물이 소금이 되려면 최소 20일 이상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소금은 저절로 나는 게 아니다.

한 달 가까이 바닷물은 날마다 옮겨 다닌다. 그 시간을 거치며 바닷물은 시나브로 제 몸집을 줄이고 염도를 높인다. 결정지에 도달했을 때 바닷물의 염도는 22∼25도를 유지한다. 27도가 되면 소금이 오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꽃이 핀다.

염전에 꽃이 피면 염부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필사적으로 소금을 수확한다. 한 정보에 염부 네댓 명이 달라붙는데, 대패를 잡고 바닥에 응결된 소금을 그러모으는 사람이 조장이다. 소금밥을 10년은 먹어야 된다는 조장의 동작에는 헛된 게 하나도 없다. 손과 발의 놀림이 정확하고 민첩하다. 나머지 염부는 삽으로 소금을 모으고 수레에 담아 소금창고로 실어 나른다.

결정지에 가둔 바닷물을 해 지기 전에 소금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소금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 밤새 이슬을 맞은 소금은 모양부터 다르단다. 염부의 노동은 소금과 다투는 게 아니다. 시간을 놓고 태양과 싸움을 벌인다.
왁자지껄해도 좋으련만 염부의 노동은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제 일만 한다. 시간이 아까워서일까, 말이 필요 없어서일까. 해질 녘의 염부는 묵언수행 중인 선승처럼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저녁놀 길게 누운 시간, 붉게 물든 염부의 굽은 등허리만큼 숙연한 풍경도 없다.

염전에서 하는 말이 있다. ‘소금 한 줌 얻으려면 바닷물 100바가지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염부의 땀 1000방울. 아니 1만 방울. 소금이 짠 건 염부의 땀 때문이라고 염부들은 농(弄)삼아 말한다.

소금창고로 옮겼다고 바로 소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간수를 빼야 한다. 소금은 간수를 많이 뺄수록 상품(上品)이다.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3년 숙성 천일염은 간수를 3년 뺐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소금은 한 달 가까이 염전에 누워 결정을 맺은 뒤 3년 동안 창고에 박혀 탈수 작업을 마친 것이다. 이 긴 세월 바닷물이 제 몸을 졸이고 졸여 흰 결정만 남긴 게 소금이다. 이 정도면 소금이 아니다. 사리(舍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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