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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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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가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4월 27일 사의를 표명했던 정 총리는 60일 만인 이날 다시 기용됐다. 물러나기로 했던 총리가 유임된 일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정 총리는 이날 “국가개조에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표를 반려, 유임을 결정했다. 정 총리가 지난 4월 27일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지 60일 만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 국가 대개조에 나서겠다며 총리 교체 방침을 밝힌 후 후임 총리(안대희·문창극 전 후보자) 물색에 나섰으나 연거푸 실패하자 정 총리 유임이란 카드를 던졌다.

 윤두현 홍보수석은 “대통령께서는 세월호 사고 후 국가개조를 이루고 국민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약속을 드렸다. 이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사의를 받아들여 교체를 결심했던 총리를 유임시킨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결정은 정치적 파장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청와대는 정 총리의 유임이 고육지책에서 나온 것이란 점을 부각한다.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한 검증을 통해 새 후보자를 찾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후보자로 거론된 인사 대부분이 검증에 걸린 데다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는 풍토 때문에 적임자 인선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고충을 털어놨다. 그렇다고 인선을 늦출 경우 국정 공백이 길어지는 데다 세 번째 총리 인선까지 실패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한다.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7·30 재·보선을 앞두고 총리 인선 문제로 야당에 마냥 끌려다닐 수만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국정이 마비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 이해가 된다”(이완구 원내대표), “대통령께서 어렵지만 해야 할 선택을 신속히 하신 것으로 평가한다”(윤상현 사무총장)고 옹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정 총리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점에서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 등 국가개조 작업을 제대로 해낼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 총리가 사표 제출→사의 접수→사표 반려의 과정을 거치면서 흠집이 난 데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국가 개혁의 적임자로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 찾고 있다”며 총리의 기준을 제시했지만 빈말이 됐다. 야당이 ‘총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나올 경우 ‘식물 총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박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국가 대개조 작업이 시동조차 걸어보지 못하고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날 “한마디로 어이없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거짓이었나. 대통령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라고 비판했다.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정 총리 유임은 국민을 기만하는 오기 인사의 극치” 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정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인사수석실을 신설키로 했다. 인사시스템을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거꾸로 인사 책임론에 휩싸여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지키기 위한 ‘땜질식 처방’이란 공격을 받고 있다.

글=신용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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