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관피아 개혁 포기하나" 여당 "고뇌에 찬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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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공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 10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6일 정치권은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과 청와대 인사수석 신설 결정에 들끓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옹호론을 편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혁조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야당은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전 국민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한 총리를 다시 기용하는 건 결국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 등 개혁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비주류 일각에서도 총리 유임은 정권의 책임회피라며 반발하는 등 비판론에 가세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국가개조를 하겠다더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할 총리로 하겠다는 거냐”며 “총리가 사의 표명한 지 60여 일 동안 국민께 그렇게 상처를 주고 결국 거꾸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국민이 느낄 실망과 허탈함을 생각해 봤는가. 이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도 “새 총리를 임명하겠다며 두 달 동안 나라를 뒤흔들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임이라니 바람 빠진 타이어로 대한민국이 굴러가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서든 7·30 재·보선 때까지만 넘기고 보자는 속셈”이라고 덧붙였다.

 율사 출신인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절차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정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지는 않았지만 후임 총리를 지명하고 (안대희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요청서까지 국회에 보낸 것은 사표수리의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며 “정 총리는 유임된 게 아니라 후임 총리 후보로 다시 지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이를 유임으로 포장하는 것은 임명동의라는 헌법 규정과 인사청문이라는 법률 규정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리 유임이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이란 지적도 나왔다. 한 재선 의원은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유족의 분통을 자아내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줬고,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무기력하게 답변했다”며 “그런 사람을 유임시키겠다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오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특히 여론몰이식 인사검증에 불만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라는 검증 권한을 쥐고 있는 국회에 대해 정 총리 유임이란 카드로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정 총리 유임은 총리 내정자를 잇따라 자진사퇴하게 한 국민여론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보복인사”라며 “음식 상한 것 같다며 다시 해오라니까 먹다 남은 음식 내오는 꼴”이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 당 이정미 대변인도 “경악 그 자체”라며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내각사퇴를 요구했던 국민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이날 이석현 국회 부의장 초청으로 여야 중진들이 오찬 회동을 한 자리에서도 정 총리의 유임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야당 의원들의 비난 발언이 이어졌다고 한다. 오찬엔 새누리당에선 정갑윤 국회 부의장, 이완구 원내대표, 황우여·이인제·정우택·진영 의원 등이, 새정치연합에선 김한길·안철수 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 우윤근 정책위의장, 문희상·원혜영·유인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새누리당 내 기류는 미묘하다. 친박근혜계 주류는 박 대통령의 결정을 두둔하며 사태를 무마하려 했고, 비주류 일각에선 김기춘 비서실장 책임론을 다시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서청원 의원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만 인사권자의 고뇌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며 “잘한 것에서보다 잘못한 것에서 더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정 총리가) 심기일전해 국정에 힘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도 이날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잘못된 청문회 문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라 생각하고 대통령의 고뇌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주류 의원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당 대표 경선에 나온 재선의 김영우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인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책임지고 떠나려 했던 총리를 다시 유임시키는 것은 책임회피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며 “김기춘 실장은 총리인사와 관련해선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다. 한 재선 의원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국민의 상식으로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며 “정 총리 유임이 7·30 재·보선에도 여당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성우·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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